WBC 한국 대표팀을 바라보는 이승엽(33, 요미우리)의 마음은 헤어진 연인을 애써 외면해야 하는 상황과 다를 바 없었다. 이승엽은 지난 3일 도쿄돔에서 열린 대표팀과의 경기에 앞서 코칭스태프에 인사만 건넨 뒤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5일 오전 OSEN과의 전화 통화에서 "내가 대표팀에 계속 모습을 드러내면 서로 좋지 않다. 대표팀 관계자들을 만나면 나도 가고 싶어지고 마음만 약해질 것 같았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지난해 왼손 엄지 부상과 부진 속에 데뷔 후 최악의 한해를 보낸 이승엽은 올 시즌 명예 회복을 위해 대표팀 은퇴를 선언한 바 있다. 그는 끊임없는 대표팀 승선 요청 속에서도 "이제는 요미우리를 위해 뛰어야 할 것 같다"고 정중히 거절했다. 2004년부터 일본 무대에서 활약 중인 이승엽은 대표팀의 남다른 매력에 대해 설명했다. "대표팀에 한 번 다녀오면 일종의 공황상태에 빠진다. 특히 나처럼 외국에서 뛰는 선수들은 더욱 그렇다. 한번씩 국제대회를 마치고 돌아오면 허탈하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에서 뛰는 것도 재미있지만 한국 선수들과 함께 뛰면 정말 행복하다. 대회 마지막 날이 되면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승엽은 대표팀과의 경기에서 1회 2타점 2루타를 터트린 뒤 공식 인터뷰 요청을 받았으나 응할 수 없었다. 그는 "공식 인터뷰에 나서면 어쩔 수 없이 WBC에 관한 질문을 받게 된다. 일본 언론에서도 언급했지만 나는 경기를 뛰는 선수이지 다른 선수들을 평가하는 사람이 아니다. 뛰지도 않는데 선수들에 대한 물음에 대답한다면 열심히 노력하는 대표팀 선수들에게 실례라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예의"라고 표현한 이승엽은 "아직도 대표팀 이야기만 나오면 미안한 마음이 크다. 대표팀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거두길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마무리지었다. 대표팀 승선과 자존심 회복이라는 갈림길에서 고심했던 이승엽의 결연한 각오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what@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