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BC]일본전 콜드패로 본 올림픽에 없었던 3가지 마운드 부담
OSEN 기자
발행 2009.03.08 12: 04

지난 8월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감격에 젖었던 한국대표팀이 그 흥분이 채 가시기도 전에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무대에서 수모를 겪었다.
한국은 지난 7일 도쿄돔에서 열린 일본전에서 2-14, 7회 콜드게임패라는 참혹한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이번 대회 전부터 9전전승 신화를 이룩하며 올림픽 금메달팀으로 주목받았던 것을 돌이켜 볼 때 그야말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전날 대만을 9-0으로 대파한 직후였다는 점에서 그 반대급부는 엄청났다.
무엇보다 마운드의 투수들은 혼쭐이 났다. 특히 '일본킬러'로 승승장구하던 20살 청년 김광현(21, SK)이 1⅓이닝만에 7피안타 8실점으로 침몰하는 장면은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일본의 주도면밀한 주무기인 슬라이더를 공략당하자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다. 이날 등장한 투수 중 1⅓이닝 무실점한 정현욱(삼성)을 제외한 장원삼(히어로즈), 이재우(두산)는 3실점씩 하며 고개를 숙였다.
이는 절대적이지 않지만 올림픽과 WBC의 차이를 새삼 부각시켰다. 올림픽과 비교할 때 박찬호, 이승엽 등 기존 대표팀의 리더겸 투타 주축이 빠졌다. 하지만 이렇듯 제대로 된 저항 한 번 못하고 승부를 넘길 정도로 전력이 약해졌다는 평가는 없었다. 이는 평가가 잘못된 것이라기보다 야구가 흐름을 타는 멘탈 스포츠 종목이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 준 현실적인 해프닝이었다.
무엇보다 WBC는 올림픽에 없었던 특수성을 지니고 있다. 더구나 이번 WBC 멤버 중 그런 특수성을 인지하고 있는 선수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투수의 경우 손민한(롯데) 봉중근(LG) 정대현(SK) 오승환(삼성) 4명만이 지난 2006년 1회 대회를 통해 이런 분위기를 인지하고 있다. 나머지 투수들은 대부분 올림픽을 통해 본격 성인대표팀으로 이름을 올렸다는 점에서 WBC만이 지닌 특수한 부담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가장 큰 부담은 투구수 제한에 따른 것이다. 이는 코칭스태프 따로, 선수 따로 분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감독이나 코치는 투수에게 "투구수를 생각하지 말고 던지라"고 안심시키고 선수들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정작 마운드에 오르면 달라진다. 선발 투수는 좀더 오래 남아 뒤에 오를 투수들의 부하를 줄이고 싶어한다.
또 선발의 경우 투구수를 정한다면 평소보다 전력투구가 가능하지만 평소와 같은 릴리스 포인트와 밸런스를 유지하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다. 투구수 제한이 없던 선발 투수가 전력 피칭할 경우 평소 피칭 모습이 한순간 무너질 수 있다. 여기에 투수들은 피하는 투구보다 공격적인 볼배턴이, 삼진보다는 맞춰 잡는 피칭이 투구수 절감에 더욱 효과적이라는 것도 인지하고 있다. 약간의 심적 동요로도 전체에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예민한 투수는 이런 심리를 역이용하려는 국가를 대표하는 일류 타자를 상대해야 하는 부담을 질 수 밖에 없다.
두 번째 부담은 앞으로의 일정이 확실치 않다는 것이다. 이번 대회의 경우 투수 입장에서는 등판일을 예상하기가 쉽지 않다. 더블 엘리미네이션 제도로 인해 대회 일정과 상대국이 급변한다. 이는 투수들의 컨디션 조절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올림픽의 경우는 날짜와 상대가 정해져 있다. 그 만큼 투수들이 체계적으로 컨디션을 알아서 조절할 수 있다는 점에서 WBC와는 확실한 차이가 있었다.
지난 올림픽에서 중국전이 우천에 의한 서스펜디드 게임으로 선언돼 잠시 차질을 빚긴 했다. 하지만 이 역시 예비일과 상대팀이 분명했다는 점에서 이번 WBC와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마지막 부담은 도쿄돔다. 이번 대표팀 멤버 중 돔구장을 경험한 투수는 그리 많지 않다. 한국 타자들은 도쿄돔이 한국 구장과 비교해 타구가 잘 날아간다고 입을 모았다. 이는 실내라는 닫혀진 공간이라는 점에서 저항이 적고 돔구장만이 가질 수 있는 기압이 암암리에 타구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른 구장에 비해 도쿄돔은 펜스 거리가 짧다.
타자들에게 유리하다는 것은 곧 투수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뜻이다. 항상 큰 것을 조심해야 하고 그러다보니 평소와 다른 밸런스, 긴장도가 곧 실투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무라타 슈이치가 지난 5일 중국전과 7일 한국전에서 각각 쏘아올린 홈런포는 투수가 도쿄돔에서 느낄 수 있는 복합적인 부담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일본전 대패는 올림픽에서 최고의 활약상을 보여준 투수들의 몰락이라는 점에서 이런 부담감을 다시금 떠올리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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