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BC]하라의 소심함이 빚은 사무라이의 비극
OSEN 기자
발행 2009.03.10 09: 51

한국이 1-0으로 앞선 가운데 살얼음판 승부를 펼치던 지난 9일 일본과 WBC 1라운드 A조 1,2위 결정전 8회말 1사 후 도쿄돔. 한국 구원투수 류현진(한화)이 일본이 자랑하는 이치로(시애틀) 에게 중전안타를 맞는 순간 한국 벤치는 일순 긴장했다. 1루에는 메이저리그에서 80%대의 도루 성공률을 자랑하는 이치로가 나가고 타석에는 한국에 유난히 강한 면을 보여줬던 나카지마(세이부)가 들어서는 장면이 연출됐다. 어디를 봐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급해진 한국은 류현진을 임창용(야쿠르트)으로 교체했다. 공 몇 개로 몸을 푼 임창용이 와인드업을 하는 순간 나카지마가 번트 자세를 취했다. 이런 상황에서 번트는 벤치의 지시가 아니고서는 나올 수 없는 상황. 결국 하라(요미우리) 감독의 번트 지시가 나온 것이다. 하늘이 한국을, 아니 하라 감독이 한국을 도와준 것이다. 이치로가 1루에 있으면 임창용의 위력적인 투구도 반감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나카지마의 번트는 임창용의 어깨를 한결 가볍게 해주었다. 번트를 성공시킨 나카지마가 한국 투수들을 상대로 좋은 타격감을 가지고 있었기에 일본으로서는 뼈아픈 번트 성공 이었다. 이 장면을 지켜보던 한국의 야구 전문가들도 하라 감독의 작전에 의아해 하면서도 내심 반기는 분위기였다. 한국팀에게는 손해 볼 것이 없는 일본의 작전이었기 때문이다. 이치로가 1루에서 임창용의 투구 밸런스를 무너트리고 2루 도루에 성공하거나 나카지마의 짧은 안타 한 방에 3루까지 진루하는 이치로의 모습은 상상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작전은 왜 나왔을까. 하라 감독은 이 작전과 관련된 질문에 ‘이치로의 단독도루 등 공격루트 중 하나이나 번트를 선택했다’고 밝혔지만 쉽사리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결국 하라 감독이 14-2 콜드게임 승을 거두고도 ‘열등감은 사라지지 않았다’며 조바심을 가졌던 그 부분이 현실화 된 것이다. 덕분에 한국은 9일 아시아예선 1, 2위 결정전서 기분좋은 1-0 영봉승을 거두고 지난 7일 완패를 깨끗하게 설욕했다. 일본은 2006년 1회 WBC서 한국에 두 번을 지는 치욕 끝에 행운으로 결승리그에 진출 세 번째 경기서 한국을 무너뜨리고 결승에 진출 쿠바를 제압하며 WBC 초대 챔피언에 올랐다. 하지만 일본야구의 산실인 도쿄돔에서 이승엽의 홈런 한 방에 무참히 무너진 그때의 치욕을 그들은 잊지 못하고 있다. 절치부심 올림픽에서 최정예 멤버를 구성해 설욕을 노렸지만 이 또한 두 번의 패배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일본은 한국야구의 엄청난 무게에 짓눌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압박감이 '미스테리 맨' 하라 감독이 1사 1루에서 번트 작전을 나오게 한 것으로 풀이된다. 경기가 끝나고 한 인터뷰에서 하라 감독은 자신의 소심함과 조급함을 자인하는 듯 한 발언을 했다. ‘다시 만나면 힘으로 도전 하겠다’ 결국 이 말은 하라 감독이 자신의 번트 작전에 대한 소심함과 조급증의 후회와 질책으로 받아들여진다. 평소 독설가로 알려진 노무라 가쓰야 라쿠텐 이글스 감독이 이 상황에서 어떤 독설을 내뱉을지도 궁금하다. 한국은 아시아 라운드 1위의 위치로 2라운드가 열리는 미국행 전세기에 탑승했다. 하와이 전지훈련지에서 중도에 돌아가던 박진만(삼성)이 1회 대회를 회상하며 후배들에게 이런 얘기를 했다. "1회 대회에서 일본을 이기고 1위를 차지, 일본에 1시간 앞서 전세기를 탑승했을 때 정말 실감이 나더라"며 "꼭 1위를 차지해 전세기를 타는 기분을 만끽하라"는 그의 얘기가 현실이 됐다. 한국은 아시아 라운드 1위를 차지했지만 일본과의 승부는 이제부터다. 예선 경기는 끝났다. 9일의 1-0 승리는 과거로 돌아갔고 이제는 1회 대회 준결승전 패배의 빚을 갚아야 할 시간이다. spjj@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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