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가슴 깊이 솟구치는 슬픔의 역사…극단 창파의 ‘동녀의 봄’ 여기저기 시체가 널브러져 있다. 끔찍한 전쟁터의 처절한 참상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존재하지 않는 역사를 기억을 되짚어 보며 끄집어낸 무대는 붉은 피가 솟아오르는 애잔한 슬픔으로 밀려온다.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기록에 의해서만 기억될 뿐이다. 기억을 되돌려 역사를 무대에 올린 극단 창파, 채승훈 연출의 ‘동녀의 봄’은 죽은 자들이 살아 움직이며 그들만의 언어로 이야기를 한다. ‘죽음의 언어’로 배우들이 ‘꺽꺽’ 소리 지르며 경직된 몸짓으로 극을 전개한다. 일상적이지 않은 연극의 무대는 순차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않다. 기억 속에 역사는 관객들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사건의 인과관계를 생각하지 않고 내던져진 극의 구성들은 무대를 해석하려하는 관객에게 더 이상 세심한 배려는 하지 않는다. 연출가 채승훈은 ‘동녀의 봄’ 1차와 2차 공연을 통해 관객들이 친숙하고 흥미롭게 작품을 볼 수 있도록 몇 가지 소통하는 장치를 적용했다. 이 작품은 구체적인 대사나 스토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연출가는 이미지와 동작만으로 구성된 무대에서 장면과 장면 간, 배우와 배우 간의 유기적 연결들을 탄탄하게 구성하려 노력했다고 밝혔다. 이것은 곧 이해되지 않은 어려운 부분에 틈틈이 연결고리를 넣어 자연스레 풀어냈다는 말이다. 결과적으로 관객이 편안한 마음으로 부담 없이 감상하길 바라는 연출의 배려다. 실지로 작품을 해석하려 하거나 읽어내려 해서 캐릭터를 분석하고 무대에 요소들을 찾으려 한다면 연극의 흐름을 놓쳐 작품 자체를 느끼기 어려운 상황에 몰린다. 따라서 관객은 보이는 그대로, 들리는 그대로 무대 위에 연출된 극을 감상하면 된다. 배우들의 몸짓 하나로 자연스레 감춰졌던 우리 민족적 수난의 고통이 붉게 물든 무대만큼이나 가슴 저리게 다가온다. 연극은 타데우즈 칸토르(Tadeusz Kantor)의 작품 ‘빌로폴 빌로폴’을 한국적으로 바꿔놨다. 이 작품을 한국적으로 각색한 채승훈의 '동녀의 봄'은 폴란드의 짙은 색을 한국적인 색으로 입혀냈다. 처음부터 폴란드의 외세 침략이나 민족 분열 등의 비극적 역사를 한국적으로 바라보며 한국무대에서 한국관객에게 다가가기 위한 작업을 시도했다. 그 접근 방법을 우리민족의 한을 어머니의 인생에 극단적으로 축약해 표현했다. 1-2차 공연에서 젊은 관객들에게 이해의 폭이 좁아 아쉬웠던 연극은 좀 더 짙은 색채의 감각적인 무대와 드라마를 극적으로 확장시키는 사운드를 더해 감상위주의 연극으로 선보였다. 그야말로 눈으로 보고 귀로 들었을 때, 가슴 속 깊이 울려퍼지는 울음 소리에 눈물을 흘리는 작품이다. jin@osen.co.kr 연극 '동녀의 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