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악한 범죄를 저질러도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사이코패스. 특별한 이유 없이 무분별하게 살인을 저지르는 이 사이코패스를 연기한다는 것은 보통 쉬운 일이 아니다. 배우들은 사이코패스 역을 맡아 특별한 개연성 없이 사람을 죽이는 연기를 펼쳐야 한다. 하정우(31)는 지난해 2월에 개봉한 영화 ‘추격자’에서 연쇄살인범 지영민 역할을 맡아 충무로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그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특별한 살인의 동기 없이 연약한 여자를 집으로 끌어들여 감금하고 망치와 정으로 찍어 죽인다. 혹은 사람을 산채로 욕실의 벽에 걸어 두고 소 돼지를 손질하듯 그렇게 해서 깔끔하게 죽이는 방법까지 친절하고 천연덕스럽게 설명한다. 성적인 열등감으로 인해서 여자들을 죽이는 것이냐는 의혹에는 강하게 분노할 뿐 살인을 저지르는 특별한 이유는 없다. 지영민으로 분한 하정우는 여자들을 죽일 때 그 살인을 하나의 놀이쯤으로 여기며 천진한 미소를 띄우기도 하고 도통 감정이라고는 없는 인물처럼 사이코패스 지영민의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살렸다. 하정우는 “감독에게 연쇄 살인과 관련된 책 4권을 선물 받아 모두 읽었고, 이와 관련된 영화와 드라마를 다 보면서 배우들의 연기를 보면서 공통점을 찾았고 따라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하지만 한편으로 지영민을 악역으로 보이지 않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또한 “범인에게 아동적인 면이 있고, 심지어 순수하다는 생각까지 했다”며 “극중 지영민이 한 행위가 놀이의 수단으로 여겼다는 유아적인 느낌이 들었다”고 자신이 해석한 방식을 설명했다. ‘추격자’보다 더 리얼하게 사라진 자가 어떻게 죽어가는지 집요하게 그려낸 영화 ‘실종’이 3월 19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실종’은 여동생이 실종되고 언니가 실종된 동생을 찾아 나서면서 연쇄살인범과 벌이는 치열한 사투를 그린 잔혹 스릴러 영화이다. 극중에서 문성근이 연기한 촌부 판곤은 연쇄살인범이 피해자들에게 얼마나 징글징글한 존재인지를 보여준다. 예쁜 여자를 골라서 감금하고 성적 노리개로 삼으며 이후 지겨워지면 산 사람을 통째로 갈아서 닭 모이로 준다. 판곤을 연기한 문성근의 눈빛은 사람을 흥미로운 표정으로 바라보면서도 살벌하게 번뜩이고, 표정은 웃는 듯 비웃는 듯 하면서도 묘하게 뒤틀려 있다. 각종 기구를 사용해서 사람을 내리칠 때의 그 담담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악한의 기운은 스크린 밖으로 그대로 전해진다. 감금된 배우 지망생으로 출연한 전세홍은 “촬영 중에 문성근 선배가 ‘정말 현아를 해할 것 같다’ ‘정말 이빨을 뽑아 버릴 것 같다’고 해서 정말 너무 무서웠고 공포감이 들었다. 그래서 문성근 선배가 전하는 공포감, 제 본능에 충실하면서 연기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털어놨다. 추자현 역시 “이번에는 계산된 연기를 할 수가 없었다. 문성근 선배의 눈빛에 리액션으로만 했다. 정말 징글징글하게 연쇄살인범 역할을 하셨고 그 기에 눌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crystal@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