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연극 ‘존경하는 엘레나 선생님’ 연극은 존경하는 엘레나 선생의 생일파티에서 시작된다. 선생을 축하하기 위해 꽃다발과 샴페인, 선물을 준비한 학생들의 노력이 갸륵해 보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학생들은 선생을 설득하기 시작한다. 시험지가 들어있는 금고열쇠를 얻기 위해 그들의 치밀한 계획이 실행되는 순간이다. 자신들의 논리로 선생을 설득하지만 쉽지 않다.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라도 하겠다는 학생들 앞에서 선생의 도덕성은 위태로워 보인다. 학생들은‘존경하는 엘레나 선생님’의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 샴페인을 터트리고 꽃다발을 준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기 위한 비열한 눈가림의 시작이다. ‘인생은 성적순’이라고 생각하는 학생들은 오직 원하는 수학시험의 점수를 얻기 위해 자신들이 공격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한다. 착하고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는 도덕적인 선생의 가르침에 맞서 시험지 몇 개의 답을 수정하는 것으로 일생을 편하게 살고 싶어 하는 학생들의 끈질긴 힘겨루기는 시작됐다. 쉬지 않고 쏟아내는 학생들의 논리는 소름끼칠 만큼 체계적이고 철학적이다. 선생을 곱게 설득하려던 학생들은 결국 협박에 이르고 난폭해진 학생들은 선생의 심리를 이용해 인질극까지 벌인다. 집안은 아수라장이 되고 전화선은 뽑혀있다. 네 명의 학생들에게 둘러싸인 선생에게 빠져나갈 출구는 없어 보인다. 비도덕적인 학생들과 도덕적인 선생과의 대립구도는 배우들의 연기력과 철학적이고 논리적인 대사를 통해 한층 칼날을 세운다. 연극의 스토리는 간단하다. 학생들의 논리가 펼쳐지면서 비극을 예감할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치열하고 끈질긴 전쟁이 얼마나 지속되느냐다. 무대는 일상적이다. 주제의식과 메시지가 확실하게 드러나는 탄탄한 극의 구성은 파괴적인 배우들의 연기로 채워졌다. 극한 심리적 압박에 시달려야 하는 엘레나 선생 역은 노련한 배우 길해연이 열연했다. 지극히 보통사람으로, 올바른 소신을 갖고 살아온 정직한 엘레나 선생 역을 차분하게 소화해내며 학생들의 노리개가 되지 않을 만큼의 감정수위를 지켜내며 인내를 발휘했다. 4명의 학생들의 캐릭터도 훌륭하다. 나름의 철학적 논리를 갖고 있는 학생들의 이미지도 극을 구성하는 데 탁월했다. 특히, 발로자 역을 맡은 김동현은 이 사건의 시나리오를 짜내는 비열한 학생 역을 잘 소화해냈다. 1980년대 소련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작품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충돌로 그려졌다. 자신의 양심을 팔아서라도 이익을 챙기겠다는 학생들의 무서운 논리로 극이 구성됐다. 작품은 80년대 러시아 상황이라고 하기엔 학생들이 펼치는 철학적, 논리적 사고가 이 시대의 사고와 크게 다르지 않다. 대학입시에 치여 목숨 걸고 수능을 준비하는 우리 교육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까발렸다. 연극은 우리가 되돌아봐야할 심각한 문제의 핵심을 짚어냈다. 그래서 더욱 어두운 그림자가 두렵게 다가온다. 선생을 설득하고 협박하며 내뱉어내는 무서운 논리들은 지금 우리 자신들의 모습 그대로를 대변하기도 한다. jin@osen.co.kr 연극 ‘존경하는 엘레나 선생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