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극단미추의 ‘리어왕’ 연극은 단번에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대학로 아르코 대극장의 높은 천정과 넓은 무대는 현대적인 감각의 한국적 이미지로 관객을 맞이했다. 고전이 지루하고 어렵다는 고정관념을 확실히 깨는 작품이다. 연극은 마당극에서 펼쳐지는 이 시대 ‘리어왕’의 새로운 도전이었다. 셰익스피어의 시어를 우리 정서에 맞게 윤색한 작품으로 ‘까다로운 연출가’로 소문난 이병훈 연출이 음악과 무대소품, 의상까지도 탁월한 솜씨를 발휘해 대작을 만들었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리어왕’을 과감히 생략하고 압축해 고전을 현대적, 한국적으로 시간과 장소에 따라 변화를 시도했다. 이 점에서 ‘리어왕’은 시의적 요소가 가미된 성공적인 작품이라 볼 수 있다. 400여 년 전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2009년 한국의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무대에 올려 작품의 메시지를 충분히 살려내 표현했다. 연극의 시의적인 시도는 이 시대 관객들과의 소통을 돕고 한정된 무대 공간을 충분히 활용하고 내제된 관객들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데도 효과적이었다. 조선시대 누각인 경회루를 응용해 만들었다는 고즈넉한 무대와 대나무 발과 병풍을 이용해 공간을 분리시키는 감각적인 무대가 인상적이다. 무엇보다 가야금과 대금 등 무대 배경에 깔려있던 악기와 정가의 우리소리는 극의 긴장감을 살려내고 관객들의 감수성을 자극했다. 비극적인 장면마다 ‘광대’의 등장으로 웃음을 자아내는 것과 원작의 대사는 유지하되 재치 있게 버무려 놓은 해학적인 대사들도 인상적이다. 이병훈 연출의 ‘리어왕’은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재를 멋들어지게 섞어놓은 이 시대의 바보가 돼버린 ‘리어왕’을 잘 표현했다. 작품에서 한 가지 주목할 만하는 것은 ‘광대’의 비중이다. 무대는 광대로 시작해 광대가 마무리를 짓는다. 단순히 리어왕과 동행하며 웃음만을 선사하는 바보스런 ‘광대’가 아니다. 광대는 극의 맥을 잇고 흥을 돋구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배반과 증오, 질투와 이기심, 권력에 치인 리어왕의 비극을 속시원히 풀어내는 역할을 맡고 있다. 덕분에 광대가 쉬지않고 내뱉어내는 대사들은 관객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꼴이다. 작품은 이미 알려져 있는 ‘리어왕’의 스토리를 윤색하고‘광대’라는 인물을 추가하는가 하면 표현하지 않은 무대공간을 조성해 관객이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했다. 극단 미추의 정교한 인물묘사와 한국의 종합예술을 연극에 담아낸 이번 무대는 2008년에 이어 2009년에도 어김없이 성공적인 ‘리어왕’을 표현했다. 인간 내면의 극한을 추구했던 셰익스피어 고전의 무게를 고스란히 담아 비극적 인물들이 겪는 절대적인 고통을 이 시대적 발상과 표현으로 잘 버무려놓은 작품이다. jin@osen.co.kr 극단 미추의 연극 ‘리어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