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베이징올림픽에서 전 세계 탁구 관계자들은 주세혁(29, 삼성생명)의 불참에 의문을 드러냈다. '수비 탁구의 달인' 으로 인정받고 있는 강자가 빠졌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당시 대한탁구협회 내부의 불협화음으로 올림픽 출전이라는 일생의 기회를 놓쳤던 주세혁은 이제 이달 말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리는 2009 세계탁구선수권대회(4.28-5.5)를 노리고 있다. ▲ 고무풀 규정의 변화가 호기 세계랭킹 9위가 증명하듯 주세혁은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선수 중 하나다. 수비 전형이라는 독특한 컬러까지 고려하면 주세혁의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러나 그런 주세혁에게도 한계는 분명히 있다.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공격을 퍼붓는 중국 선수들이 그에게는 언제나 걸림돌이었다. 그러나 그런 주세혁에게도 기회는 왔다. 바로 몸에 유해한 솔벤트 성분이 없는 새로운 고무풀을 쓰도록 한 규정의 변화다. 높은 반발력을 무기로 삼던 중국 선수들은 감각을 잃고 흔들리는 반면 수비 탁구를 펼치는 주세혁은 최근 놀라운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KRA컵 SBS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거둔 주세혁은 "공이 보이니 여유가 생긴다"면서 "이제는 중국 킬러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여유까지 보였다. ▲ 세계선수권에 강한 주세혁 주세혁에게 세계선수권에 대한 기대가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일. 더군다나 주세혁은 유독 세계선수권에 강한 선수다. 군인 신분으로 출전했던 2003년 프랑스 파리 대회서는 한국 남자 탁구 사상 최초로 단식 결승전에 진출하기도 했다. 대표팀 유남규 감독도 기대감을 드러내는 것은 마찬가지. 유 감독은 "(주)세혁이가 물이 올랐다. 자신감을 쌓은 세혁이가 세계선수권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가 된다"고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주세혁은 의외로 신중한 자세다. 여전히 우승을 거론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주세혁은 "세계랭킹 9위라고 하면 대단해 보이죠?"라고 되물은 뒤 "그래도 시드는 16강 시드밖에 못 받아요. 아차하면 16강 탈락인 거죠"라고 침착하게 말했다. ▲ 마음을 비우면 우승이 보여요 주세혁은 자신이 극복해야 할 문제가 한 가지 있다고 고백했다. '하얀 공포'를 넘어서야 한다고 했다. 하얀 공포란 경기 도중 긴장한 나머지 공황 상태에 빠지는 것을 말한다. 탁구 선수라면 누구나 겪는 문제다. 다만 수비 탁구를 하는 주세혁이 좀 더 자주 겪을 뿐이다. 주세혁은 "막연히 이기고 싶을 때 머리 속이 하얘진다. 지고 있을 때보다 이기고 있을 때 더 자주 나타난다"면서 "결승전에서는 언제나 만나는 괴물"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주세혁은 대비책은 있다고 했다. 마음을 비우는 것. 그리고 상대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지 않는 철저한 훈련이다. 주세혁은 "알면서도 잘 안 되는 문제들"이라고 전제하면서도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 머릿속이 환해지면서 창의적인 탁구가 떠오른다. 훈련을 충분히 하면 두려움도 없다. 몸이 지치지 않는데 마음이 지칠까. 이번 세계선수권에서 내 과제다"고 다짐했다. stylelomo@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