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박종규 객원기자] “옛날에 우리 때는 선발 다음날 마무리로 나왔어” 올시즌 프로야구에서 실종된 기록이 있다. 바로 선발투수들의 완투승이다. 시즌이 개막된 지 한 달이 지난 6일 현재, 1회 첫 타자부터 9회 마지막 타자까지 상대하고 포수와 하이파이브를 한 투수는 없다. 지난 5일 SK 와이번스의 김광현은 롯데 자이언츠와 원정경기에 선발 등판, 9회말 1사까지 투구수 98개만을 기록하며 완봉승을 눈앞에 두었으나 마운드를 내려왔다. 많은 이들이 의아해하는 장면이었으나 김성근 감독은 김광현의 컨디션을 고려해 결정을 내렸다. 지난달 14일에도 KIA 타이거즈의 외국인 투수 릭 구톰슨이 완봉승 문턱에서 마운드를 내려온 바 있다. 사직 롯데전에 선발 등판했던 구톰슨은 9회말 2사까지 무실점을 기록했으나 공을 유동훈에게 넘겼다. 9이닝을 소화하고도 승리와 인연이 없던 투수들도 있었다. KIA 윤석민은 지난달 11일 광주 삼성전에서 9회까지 1실점만을 허용했으나, 1-1 상태에서 연장전에 돌입하는 바람에 승리는커녕 완투 기록마저 얻지 못했다. 두산 베어스의 김상현은 지난달 16일 잠실 히어로즈전에서 9이닝 1실점을 기록하고도 패전투수가 됐다. 팀이 0-1로 진 까닭이다. 6일 현재, 8개 구단 선발투수들 중 완투 기록은 위와 같이 김상현이 유일하게 가지고 있다. 여전히 완투승 혹은 완봉승은 요원한 상태다. 지난 5일 목동구장 감독실에서 만난 히어로즈 김시진 감독은 올시즌 완투승 실종에 대한 의견을 피력했다. 과거 자신의 선수시절과 비교하며 무용담을 늘어놓기도 했다. 김 감독은 최근 선발투수들이 많은 이닝을 소화하지 않는 추세의 원인을 크게 두 가지로 꼽았다. 첫째는 선수 보호차원이다. 항상 투수의 컨디션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김 감독은 “누구든지 오래 일하면 힘들다. 기계도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라며 투수들의 어깨를 걱정했다. 두 번째로는 구위 문제다. 선발투수가 오래 던지게 되면 경기 후반에는 당연히 공의 위력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김 감독은 “요즘에는 투수가 100개 이상 던지는 경우가 드물다. 접전을 펼치는 경기에서는 110개 정도 던지고, 120개가 한계다. 우리 투수들도 마일영이 119개, 장원삼이 109개, 김수경이 103개, 이현승이 117개 던진 게 최고 기록이다” 라며 투수들의 기록이 적힌 표(Pitching chart)를 살펴보고 있었다. 뒤이어 “요즘은 벤치에서 말하기 전에 자신들이 더 이상 못 던지겠다고 말한다. 투수가 마운드에서 더그아웃 쪽을 쳐다보면 감독은 고개를 돌리기도 한다. 결국 감독에게 말을 못하는 선수는 트레이너나 코치를 통해 자신의 의사를 간접적으로 전달한다” 며 요즘의 분위기를 전했다. 현역 시절, 삼성과 롯데를 거치며 통산 124승을 거둔 대투수 출신의 김 감독은 과거의 무용담을 이어갔다. “1985년도에 내가 25승, 김일융이 25승을 했으니 둘이 합쳐서 50승을 한 셈이다. 그 시절에는 선발투수가 다음날 마무리투수로 등판하기도 했다. 당시에 총 110경기를 했는데, 내가 47경기에 출장하고 김일융이 34경기에 출장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 때 내가 269이닝을 던졌는데 요즘은 200이닝을 넘는 경우가 거의 없지 않은가” 실제로 김 감독은 1985년 시즌에 47경기(선발 29경기)에 등판해 25승 5패 10세이브를 기록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등판한 셈이다. 그렇게 선수 시절에 ‘혹사’ 의 경험이 있는 김 감독은 투수들에 대한 관리가 철저하다. 선발 투수들 뿐만 아니라 중간계투진 한 사람 한 사람의 컨디션까지 살핀다. 과거에 자신이 겪었던 고생들을 제자들에게까지 물려주지 않겠다는 의미다. 최근의 완투승 실종은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해석된다. 많은 이닝을 던지고, 마지막 순간에 무리를 하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부상을 키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는 완투승 기록, 그 이면의 위험성을 알기에 투수들이 영광을 포기할 수 있는 게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