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박종규 객원기자] “발이 느리면 센스라도 있어야죠”. 히어로즈의 주전 유격수 강정호가 ‘독특한 묘기’ 를 선보여 야구 보는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베이스와 베이스 사이에서 서로 쫓고 쫓기는 추격전, 바로 런다운 플레이다. 강정호는 의외로 도루를 하지 않는 선수다. 기록을 살펴보면 지난해의 3도루가 전부인 데다 프로 4년을 통틀어 도루 시도가 5번에 불과하다. 올시즌에는 도루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강정호의 민첩함은 궁지에 몰릴 때만 발휘되는 모양이다. # 강정호의 묘기 1 강정호의 ‘묘기’ 는 지난달 16일 잠실 두산전에서 처음 발견됐다. 7회초 1사 후 1루에는 강정호, 2루에는 송지만이 주자로 나가있었다. 대타로 들어선 이숭용은 볼카운트 2-2에서 5구째 낮은 공을 빗맞췄는데 이 타구가 묘한 궤적을 그렸다. 2루수 쪽으로 약간 뜬 타구가 체공시간이 짧아 인필드 플라이 선언이 되지 않은 것이다. 영리한 두산 2루수 고영민은 타구를 바로 잡지 않고 숏바운드로 처리해 1루로 송구, 타자 주자를 아웃시켰다. 그 다음으로 1루와 2루 사이에서 멈춰선 1루주자 강정호를 잡아내려 했다. 그런데 여기서 강정호와 두산 내야진 간의 쫓고 쫓기는 싸움이 시작됐다. 이숭용을 아웃시킨 공이 유격수-1루수-유격수로 송구될 때까지 강정호는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마지막으로 유격수 손시헌이 강정호를 따라잡아 태그를 시도했으나, 강정호가 순간적으로 엎드리며 태그를 피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결국 좌익수 김현수가 2루 베이스 앞에서 강정호를 아웃시켰지만, 그 직전에 2루주자 송지만이 홈을 먼저 밟아 득점이 인정된 채로 이닝이 종료됐다. 이 때 강정호는 약 10.5초 정도를 버텼다. 그리하여 이숭용이 아웃되는 순간 3루로 스타트한 송지만이 홈을 밟을 만한 시간을 벌은 것이다. 결국 이것은 결승점이 되어 히어로즈의 1-0 승리의 소중한 득점이 됐다. 당시 상황에 대해 강정호는 “(고)영민이형이 숏바운드로 처리할 줄 알고 2루로 방향을 틀었어요. 야수들 간의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몇 번 페인트 동작을 했더니 다들 속는 거에요. 나중에는 오기가 생겼는지 (송)지만이형 잡을 생각은 안하고 나만 잡으려 달려들더라고요” 고 설명했다. # 강정호의 묘기 2 지난 1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히어로즈와 LG 트윈스의 경기에서도 강정호의 '쫓고 쫓기기‘를 감상할 수 있었다. 3회초, 강정호는 무사 2루 상황에서 투수 앞 내야안타로 1루를 밟았다. 무사 1,3루에서 타석에 들어선 황재균이 친 타구는 크게 바운드되는 바람에 2루수가 전진해서 잡아야 했다. LG 2루수 박경수가 길목에서 공을 잡자 2루로 뛰던 강정호는 순간 멈칫하며 뒷걸음질 쳤다. 박경수는 황재균을 먼저 아웃시키고, 강정호를 협살에 걸리게 할 생각으로 일단 1루에 송구했다. 문제는 다음부터였다. 1루와 2루 사이에서 갈 곳을 잃은 강정호는 양쪽 베이스 쪽으로 각각 두 번씩 방향전환을 했다. LG는 땅볼을 잡은 박경수-1루수 페타지니-유격수 권용관-페타지니-권용관 순으로 공을 돌리며 강정호를 잡아내려 했다. 그러나 쉽게 아웃당하지 않는 강정호였다. 시간상으로는 약 8.5초가 걸렸다. 물론 3루 주자는 손쉽게 득점에 성공했지만, 만약 2루에 주자가 있었다면 홈으로 들어올 수 있을만한 시간이었다. 강정호는 “그 때는 좀 힘들었어요. 3루 주자도 이미 홈인해 포기했죠” 라고 말하며 숨 가쁘던 기억을 떠올렸다. ‘묘기’ 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강정호는 “글쎄요, 제가 원래 발은 느린데 센스가 좋다는 얘기를 들어요. 발이 느리면 센스라도 있어야죠” 라며 웃었다. 센스있는 선수. 강정호를 표현하기에 딱 좋은 말이다. 그가 2군에서 기량을 갈고 닦던 지난 2007년 당시 김종수 2군 감독도 “입단하자마자 포지션을 포수에서 유격수로 옮겼는데, 적응이 빠르다. 기본적인 센스가 있어 야구를 참 잘하는 선수다” 라고 칭찬한 적이 있다. 체격으로 봐서는 발이 빠를 만 한데 의외로 느리다는 말에 강정호는 “고등학교(광주일고) 때 포수할 사람이 없어서 제가 마스크를 썼어요. 그랬더니 포수를 하던 친구들이 전학을 가더라고요. 3년 내내 포수만 해서 그런지 무릎이 아프네요” 라고 말했다. 알고 보니 강정호의 뛰어난 재능 덕분이었던 것이다. ‘센스로 먹고사는’ 강정호. 훗날 노장이 된다면 아무리 발이 느려도 센스로 충분히 커버할 수 있지 않을까. 39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야구천재’ 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는 그의 고교선배 이종범(KIA)같이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