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예능 MC계는 김구라 전성시대다. 출연 프로의 숫자 등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그렇다. 목 금 토 일요일, 4일 연속으로 지상파 TV의 메인 MC로 활약하는 인물도 김구라 한 명 뿐이다. 그렇다면 2009년 상반기 대한민국 예능은 김구라가 최고일까?
그 속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몇 가지 의문점을 찾을 수 있다. 무엇보다 김구라 출연 프로의 시청률과 인기에는 거품이 잔뜩 끼었다는 사실이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출연 프로는 많아도 그의 트레이드 마크로 내세울만한 알짜배기를 찾아보기 힘들다.
유재석과 강호동의 국내 투톱 MC는 겹치기를 자제하며 출연 프로를 서너개로 줄였지만 그 대부분이 예능 시청률 톱10안에 진입했다. 최고 인기를 다투는 '무한도전' '패밀리가 떴다' '1박2일' '무릎팍 도사' 등이 모두 이들의 진행 코너다.
또 유재석과 강호동은 프로 전체를 아우르는 힘을 가진 MC들이다. 요즘 예능의 대세인 리얼버라이어티 집단 MC 체제를 이끌어가는 친화력(유재석)과 카리스마(강호동)가 뛰어나고 토크쇼에서의 단독 진행과 개인기에도 강점이 있다.
반면 인터넷 방송에서 독설 개그로 뜨기 시작한 김구라는 남의 말을 받아치는 데 능한 개그맨이고 MC다. 되로 받고 말로 갚아주는 스타일의 일인자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게 집단 MC의 묘미인데 김구라의장점은 상대를 밟을수록 진가를 발휘하는 게 아이러니다.
그와 비슷한 스타일의 MC가 바로 탁재훈. 당연히 둘이 만나면 엇박자가 나기 십상이다. 실제로 김용만 신정환 이혁재 등과 함께 둘이 집단 MC로 나선 '일요일일요일 밤에'의 '대망' 코너는 방영 몇 주만에 막을 내렸다.
또 14일 전파를 탄 SBS의 새 목요 심야예능 '탁재훈 김구라의 비행기'는 TNS코리아 집계결과, 전국 시청률 3.7%를 기록했다. 같은 시간대 터줏대감인 KBS 2TV 유재석의 '해피투게더'는 15.4%. 아직까지는 유재석과 김구라 사이에 어떤 장벽이 놓여있는 지를 여실히 말해주는 대목이다.
현재 김구라는 금요일 밤 SBS '절친노트', 토요일 밤 MBC '세바퀴', 일요일 저녁 '일밤-퀴즈 프린스' 등에서 MC로 참여하고 있다. 이 가운데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프로는 '세바퀴'가 유일하지만 '세바퀴'의 인기는 줌마테이너-저씨테이너 게스트에 기인하는 바가 더 크다. 또 '대망'에서 포맷을 바꿔 출연진을 계승한 '퀴즈프린스'는 일요일 저녁 예능임에도 3~4%의 낯 뜨거운 시청률로 고전을 면치 못하는 중이다.
김구라의 전성시대에 거품을 얘기하는 또 하나의 근거는 실패율이 너무 높다는 점이다. SBS의 대표적인 예능 실패작 '라인업'과 MBC '불가능은 없다' '대망'처럼 그가 MC로 나선 프로들 가운데 상당수는 조기 종영의 비극을 맛봤다. 톱MC로 평가 받기위해서는 반드시 극복해야할 부분이다.
단, '명랑히어로'나 '라디오스타', '세바퀴'처럼 집단 토크의 형태에서 김구라의 가치는 단연 빛난다. 본인은 곧잘 농담식으로 "나도 먹고 살아야 하지않냐"며 야인 시절의 강렬했던 독설과 독기를 줄인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김구라 식 MC가 살아남을 유일한 길은 그의 태생적 독설에 있음에 분명하다. 김구라가 방송계 주류 MC로 성장하면 할수록 그의 진정한 힘이 고개를 숙이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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