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프로그램의 신주류로 급부상했던 독설 김구라와 뒷전으로 밀려나는 듯 했던 호통 이경규의 명암이 다시 바뀌는 분위기다. 여전히 김구라가 지상파 TV 예능의 출연 숫자는 앞서고 있지만 질적인 면도 함께 고려할 때 이경규의 회복세가 뚜렷한 요즘이다. 김구라는 원래 이경규와 친한 후배 개그맨들을 뜻하는 '규라인'의 주요 멤버 가운데 한 명이다. 김구라가 인터넷 방송 등에서 강렬한 독설 개그로 관심을 끌고 지상파 TV로 진출했던 초창기 무명시절과 이후 자리를 잡는 동안에는 이경규의 도움이 컸다. 두 사람이 함께 출연한 예능도 않았다. 대표적인 프로가 MBC 주말 저녁의 강자 '무한도전'을 겨냥해 이경규가 야심차게 기획한 SBS '라인업'이다. 그러나 '라인업'은 얼마 버티지 못한채 조기종영의 비운을 맛봤고 이경규-김구라 콤비의 호흡은 이후에도 별다른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장강의 뒷물결이 워낙 거셌던 탓일까. 이경규가 메인 MC를 맡았던 프로들이 차례로 부진의 늪에 빠져 허우적 거릴 때 김구라는 톱MC 대열에 합류했다. 현재 그가 진행하는 예능 프로는 목~일요일 4일 연속 각 지상파 TV에 깔려 있다. 예능 MC 중에서 최고의 호황을 누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목요일 '탁재훈 김구라의 비행기'를 시작으로 금요일 밤 SBS '절친노트', 토요일 밤 MBC '세바퀴', 일요일 저녁 '일밤-퀴즈 프린스' 등에서 MC로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세바퀴' 외에는 아직 시청률 등에서 고전을 면치못하는 중으로 외화내빈이다. 거꾸로 지상파 예능 MC에서 거의 모습을 감췄던 이경규는 일요일밤 친정 MBC를 떠나 KBS 2TV로 자리를 옮겨 출연한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에서 새로운 변신으로 호통 개그를 살려가고 있다. 영원한 졸병 이윤석의 거센 반란이 자주 일어나고 천적 김국진의 날카로운 일침에 번번이 고개를 숙이는 게 요즘 이경규의 수그린 자세다. 그렇다고 호통을 못치는 건 아니다. 예능 새내기인 김성민과 까마득한 개그맨 후배 윤형빈 등을 향한 그의 질타는 여전하다. 예전과 다른 건, 늘 예능 최고참 MC로서 독불장군이었던 그가 호통 개그에 완급을 두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오만한 이경규와 그를 떠받드는 후배 MC들의 모습에 불편함을 느꼈던 시청자들이 다시 마음을 돌리는 계기가 여기서 비롯됐다. 또 SBS '붕어빵' 등 차분하고 노련한 진행이 필요한 예능 프로에서는 단독MC가 충분히 가능한 그의 장점이 제대로 살아나고 있다. 거꾸로 '제대로 한 게 뭐 있냐'고 깐족이는(김구라)의 독설개그는 TV 속 예능의 조연이고 양념으로 큰 빛을 발했던 것과 달리 치솟은 인기를 발판 삼아서 메인 MC로 나선 게 오히려 독이 됐다. 하지만 김구라는 집단 MC 체제로 누가 더 많이 떠드나를 겨루는 듯한 '명랑히어로' '라디오스타' 등에서는 특유의 날카로운 촌철살인 독설로 시청자들을 사로잡는 중이다. mcgwire@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