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가 온다면 저도 잘할 수 있습니다". 야구는 '멘탈 게임'이다. 지구력보다 순발력을 중시하는 야구는 찰나의 집중력이 경기 결과를 완전히 바꿔 놓는 종목인 만큼 경험이 일천한 유망주의 '담대함'은 굉장히 높은 점수를 얻는다. 주전 톱타자 이종욱(29), 2루수 고영민(25)의 부상 이탈을 겪었음에도 7연승을 질주 중인 두산 베어스는 이들을 대체한 민병헌(22), 김재호(24)의 활약에 함박 웃음을 짓고 있다. 여기에 신인 외야수 정수빈(19)도 요긴한 활약을 펼쳐주고 있다. 지난해 톱타자로 주목을 받았으나 공을 골라내는 능력에서 낮은 점수를 받으며 벤치 워머로 전락했던 민병헌은 이종욱의 부상 이탈을 완벽하게 메우고 있다. 이종욱의 엔트리 제외 후 민병헌의 최근 성적은 6경기 3할6푼(25타수 9안타, 16일 현재) 2타점 5득점 1도루다. 사사구는 없지만 적극성을 바탕으로 짧게 끊어치는 타격을 보여주고 있다. 전지훈련서부터 고영민의 가장 강력한 대체자로 지목받았던 김재호 또한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2루수로 선발 출장한 김재호의 최근 4경기 성적은 14타수 5안타(3할5푼7리) 5타점. 원체 운동능력이나 균형 감각이 좋은 선수인만큼 2루 수비 면에서도 크나큰 약점은 비추지 않고 있다. 경기 후반 교체 멤버로 이름을 올리는 정수빈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정수빈은 지난 13일 목동 히어로즈 전서 7회 2타점 우전 안타를 때려낸 뒤 상대 우익수 덕 클락(33)이 공을 한 번에 잡지 못하는 틈을 타 2루까지 내달린 뒤 과감한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까지 보여주었다. 대주자, 대수비로 출장 기회를 얻으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정수빈이지만 그의 포부는 미소년을 연상케 하는 가녀린 외모와 정반대였다. "뛰어난 기량을 자랑하는 선배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나도 기회가 온다면 내 스윙을 자신있게 보여줄 수 있다"고 밝힌 정수빈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있었다. 지난해 전반기서 주전 유격수로 출장 기회를 얻었던 김재호 또한 "쓸 만한 교체요원 정도의 평가는 사양한다. 주전으로 나서도 손색이 없는 선수라는 것을 경기력으로 보여주겠다"라고 밝혔다. 순둥이처럼 주전 선수의 공백을 메우는 데 만족하기보다 어렵게 잡은 기회를 앞으로의 발전 토대로 만들겠다는 의지가 강력했다. 근성 있는 선수를 중용하는 김경문 1군 감독과 마찬가지로 박종훈 육성군 감독 또한 유망주들의 정신력을 강조했다. 박 감독은 "그저 '자신있다'라고 말만 해서는 안된다. 타석에 섰을 때 국내 최고의 에이스가 마운드에 있어도, 마운드에 있을 때 국내 최고의 거포가 타석에 들어섰어도 부담 없이 자기 실력을 뽐내는 것이 진짜 '자신감'이다"라며 유망주들의 정신력을 고취시키는 데 집중하고 있다는 지도방침을 이야기했다. 1,2군을 막론하고 프로 무대에 몸 담은 선수들은 저마다 당해년도 최고의 유망주이자, 모교의 주축 선수로 명성을 떨쳤던 선수들이다. 지금은 두산을 떠났으나 지난 시즌까지 프랜차이즈 스타로 활약했던 홍성흔(32. 롯데)은 "1,2군과 주전-백업 선수들의 실력 격차는 그리 크지 않다. 중요한 건 하겠다는 마음 가짐과 집중력이라고 본다"라고 밝힌 바 있다. 두산은 다른 구단에 비해 선수단 지원이 확실하다고 보기는 힘든 팀이다. 그러나 정신력을 갖춘 백업 멤버들은 근성을 발휘하는 동시에 선수층을 자체적으로 두껍게 만드는 힘을 발휘했다. 김 감독 취임 이후 '대체자'의 활약과 성장 속에 줄곧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고 있는 두산의 현재 모습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farinelli@osen.co.kr 김재호-민병헌-정수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