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배우들의 의외의 악역 변신이 안방극장에서 줄을 잇고 있다. '국민 엄마'였던 김해숙은 이제는 '천의 얼굴을 가진 엄마'가 되어 가고 있다. 얼마 전 종영한 SBS '카인과 아벨'에서 김해숙은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해 아내로도, 어머니로도 비정상적인 행동을 일삼는 나혜숙 역을 연기하며 인상을 남겼다. 김해숙은 '카인과 아벨' 뿐만 아니라 현재 방송중인 MBC '하얀거짓말', 영화 '박쥐'를 통해서도 기괴한 광기를 지닌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 '해바라기'에서 보여준 모성 절절한 눈물겨운 엄마의 모습, SBS '조강지처 클럽'에서 억척스러운 듯 코믹한 엄마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르다. 주로 비뚤어진 모정을 지닌 엄마 역할을 잘 소화하는 김해숙이 분한 악역은 넘치는 카리스마로 주위를 압도한다. 김창완은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MBC '내조의 여왕'을 통해 한 차례 더 악역으로 변신, 시청자들에게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극중 김창완은 순한 양의 얼굴로 배신과 음모를 일삼는, 조직 사회의 이기적이고 비인간적인 모습의 전형 김홍식 역으로 출연했다. 김창완의 악역 변신은 사실 새로운 것을 아니었는데, 그는 MBC '하얀거탑'에 이어 지난해 SBS '일지매'에서도 악역으로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착하고 정감있는 인상과 온화한 말투의 김창완이기에 그의 진지한 악역 변신은 더욱 큰 효과를 낸다. 의외성이 기대와 새로움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는 '내조의 여왕' 마지막에서 자신에게 등을 돌린 부하 직원들에게 "너무 애쓰고 살지 말아라"는 말을 전하며 쓸쓸한 뒷모습을 남겼다. '일지매'에서도 유약한 듯 불안한 악역 인조로 분해 '고정관념을 깨는 임금'이란 평을 들었다. 이처럼 그의 악역 변신은 어딘지 모르게 페이소스를 자아내기도 한다. 온화함의 대명사인 김미숙은 현재 방송중인 SBS '찬란한 유산'에서 섬뜩함을 자아내는 악역 백성희로 시청자들을 만나고 있다. 1979년 데뷔한 지 30년 만에 처음으로 악녀로 나선 그녀는 기품 있고 이지적인 본인의 본인의 기본 이미지를 이어가면서 장소, 상황에 따라 무섭게 변하는 카멜레온 같은 악역을 보여준다. 목적을 위해 마지막 양심도 저버리고, 자신의 잘못을 딸을 위한 것이라며 쉽게 합리화하는 이중적인 백성희는 폭발적인 카리스마는 부족하지만 보면 볼수록 소름끼치는 인물이다. 중견 연기자들은 오랜 시간 시청자들을 만나 어느 정도 고착화된 분위기와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연기 변신이 더욱 힘들다. 하지만 그렇기에 반대로 돋보이는 경우도 많다. 얼마 전에는 중견배우들이 시트콤 등을 통해 한결 가벼워지고 코믹하게 변신하는 것이 눈에 띄었었다. 이제는 한층 진지함을 덧입고 무거운 악역에 도전하는 모습 역시 시청자들에게 새로운 보는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nyc@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