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남원의 영화산책] 스타일리스트 박찬욱 감독이 얼마전 화제작 '박쥐'로 칸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하며 자신의 진가를 확인했다. '올드보이'에 이어 또 다시 칸으로부터 공식 인정을 받은 그는 이제 전세계가 주목하는 명장의 대열에 올라섰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연일 지면과 인터넷을 달구는 박찬욱 송가에도 불구하고 '박쥐'의 국내 흥행은 인정사정 볼 것없이 추락하고 있다. 칸에서의 수상이 한국 관객들에게 별다른 감흥을 주지못했다는 얘기다. 왜 그럴까. 영화진흥위원회 집계에 따르면 지난 주말까지 '박쥐'는 모두 214만 명 관객을 기록했다. 박스오피스 성적은 7위. 개봉 첫 주말 63만 명 관객을 불러모으며 당시 기준으로 올해 최고 스코어를 냈던 열기가 금세 식어버렸다. 한 마디로 얘기할 때 관객 입소문이 나빴기 때문에 빚어진 결과다. 애시당초 '박쥐'는 일반 영화팬들이 쉽게 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니었다. 젊은 시절(지금도 그럴지 모른다) B급 영화 매니아로 알려진 박 감독이 제작자 간섭과 투자 유치 등 여러가지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박찬욱' 브랜드를 확고히 구축하고 난 뒤에 자신의 작가주의적 열망을 마음껏 분출시킨 작품이다. 송강호에게 벌써 출연을 제의했다는 10년 전 구상과 아마 달라진 점이라면 80억원 거금을 들여 만들어진 '박쥐'는 다분히 칸을 겨냥한 인공 조미료의 진한 맛이 곳곳에서 배어나온다는 점이다. 그러나 불편한 화면 구도에 불친절한 극적 전개, 스크린 가득 튀는 피와 엽기 살인의 반복은 칸에서조차 양 극단의 비평을 불렀다. 국내 시사 후, 대다수 언론의 지나친 열광은 다분히 박찬욱이란 이름값에 현혹된 착시 현상이었고 제작사는 작가주의와 상업영화의 경계선상에 위치한 이 영화를 '꼭 봐야할 박찬욱의 뱀파이어 치정물'로 화려하게 포장했다. 개봉 첫 주말 터진 관객의 절반이 이 영화를 보고 즐길만한 박찬욱 팬들이었다면 나머지 절반은 제대로 낚시에 걸린 희생자였다. '박쥐'의 2주차 관객 감소율이 컸던 건 희생자들의 절규 탓이다. "모처럼 극장에 갔다가 기분을 망치고 돌아왔다"는 악평들이 인터넷을 달구면서 '박쥐'를 볼려고 대기했던 이들은 일단 보류를 선택했고 결국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의 재판이라는 사실을 눈치챘다. 이 때부터 '박쥐'는 칸에서의 공식 상영 때 쏟아진 기립박수, 레드카펫 때의 스포트라이트, 수상 예감 등 믿거나 말거나 식의 소식들을 연신 쏟아냈다. 결국 '박쥐'는 심사위원상을 받았고 국내 개봉 전 부터 불을 지폈던 칸 마케팅의 대미를 장식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칸 수상과 국내 흥행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전도연이 여우주연상을 받았던 '밀양'의 예가 보여주듯이 일정 수요층 이상의 관객 유입을 기대하는 데는 한계가 분명해 보인다. 칸과 베를린, 베니스 등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 한국영화가 초청될 때마다 뜨거운 성원을 보내는 국내 관객들도 그렇다고 영화제 수상이 8000원 관람료를 넘어서는 재미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지 벌써 오래기 때문이다. 세계 영화계, 특히 유럽이 주목하는 김기덕 홍상수 감독이 이제 한국에서는 개봉관 잡기조차 힘든 게 그래서고 박찬욱 감독이 풀어야할 딜레마가 그 안에 숨어있는 듯 하다. [OSEN 엔터테인먼트 부장]mcgwire@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