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객석’과 설치극장 정미소가 봄빛 가득한 연극 한 편을 무대에 올렸다. 러시아 작가 아르부조프의 1975년 작 ‘시간이 흐를수록’이 윤석화-최민건의 힘과 매력 넘치는 이인극 무대로 꾸며져 오는 27일까지 설치극장 정미소에서 관객들을 맞고 있다. 이미 삶의 절정을 넘겨버린 중년 남녀가 우연히 만나 서로를 알게 되고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연극이다. 사랑에 대한 잔잔한 감동과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찾아가게 하는 작품이다. ‘시간이 흐를수록’은 분명 사랑 이야기지만 불꽃같이 치열하고 폭풍처럼 격렬한 감정은 아니다. 두 주인공 로디온과 리다가 보여주는 것은 삶의 굴곡을 다 겪어낸 사람만이 피워낼 수 있는 잔잔하고 사려 깊은 사랑이다. 치열한 갈등이나 드라마틱한 사건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아픔과 눈물의 세월을 기억 속에 묻은 뒤에야 지을 수 있는 관조적인 웃음, 외로움과 고통을 다 흘려 보낸 뒤에야 보여줄 수 있는 따스한 여유와 유머가 있다. 1958년 리가의 한 조용한 요양원. 환자들을 돌보며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던 40대 후반의 원장 로디온 앞에 어느 날,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매력적인 여인 리다가 나타난다. 지극히 상식적인 범위 안에서 생활하면서 담담하게 지나온 삶을 정리하고 있던 로디온과 매 순간 남과 다른 시선으로 삶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자 하는 리다는 첫 만남부터 삐걱거리며 다투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도 깊어간다. ‘시간이 흐를수록’(원제 ‘오래된 코미디’)을 쓴 알렉세이 아르부조프는 소비에트 시절 체홉 만큼이나 자주 공연되었던 러시아 드라마계의 거목이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딱딱한 이념을 일상적인 삶 속에서 부드럽게 그려낸 것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무엇보다 감각적인 대사와 섬세한 심리묘사로 이름이 높았고 비평과 대중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몇 안 되는 작가였다. ‘락희맨쇼’ ‘이발사 박봉구’ ‘리타 길들이기’를 통해 젊고 감각 있는 무대를 보여줬던 연출가 최우진이 ‘시간이 흐를수록’의 연출을 맡았다. 그는 “작품 자체에 여백이 많기 때문에 작품을 설명적으로 이해시키기보다는 간결하고 함축적인 이미지로 그려가려고 합니다. 무엇을 느끼고 받아들일 지는 전적으로 관객들의 자유에 맡겨야죠. 다만 한 가지 소망이 있다면, 이 작품을 보고 관객들이 최소한 그날 하루만큼은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고 연출의 변을 밝히고 있다. 100c@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