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들의 드라마'로 치부되던 TV 영웅사극의 영역에 역사 속 여걸들이 뛰어들었다. 대표적으로 현재 방송중인 MBC '선덕여왕', KBS 2TV '천추태후'를 들 수 있는데, 이들 작품을 비교하면 여성들이 중심에 선 '여걸 사극'에 대한 묘한 이중적 시선을 볼 수 있다. 남자들보다 더 남성적인 여성들에 대한 로망과 여성성이 제거된 여걸에 대한 대한 부담감이 동시에 나타나는 것이다. '선덕여왕'은 초반부터 미실 역 고현정의 기선 제압으로 눈길을 끌었다. 극중 미실은 뛰어난 미모와 색공술로 진흥왕, 동륜태자, 진지왕, 진평왕 등 여러 왕들과 화랑들을 휘어잡았던 여걸이자 뛰어난 정치 감각과 강한 카리스마의 소유자다. 권력을 탐하나 '장희빈'류의 사극 여성상들에서 한 층 업그레이드한 듯한 요부, 팜므파탈적 느낌이 강하다. 최고 권력을 탐하는 음모가인 이 여걸에는 이처럼 여성성의 면모를 극대화한 모습이 있다. 이것이 '야망가'라는 남성성과 맞닿으며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선덕여왕'이 방송 3회만에 시청률 20%에 돌파한 것도 미실 고현정의 힘이 크다. 반대로 '천추태후'의 주인공 천추태후 채시라는 초반부터 철저한 '남성적' 여걸을 그려냈다. 말타고 활쏘고 창을 휘두르는 등 남성적 액션으로 극의 남자 등장인물들을 제압했다. 천추태후가 여성성을 드러낼 때는 주로 강한 모성을 필요로 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런 천추태후는 예상보다 시청자들의 큰 반응을 얻지 못했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시청자들이 주인공 천추태후 캐릭터에서 채널를 고정하게 만드는 강한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도 한 이유다. 야망, 정의, 열정 등으로 남성들을 물리치는 천추태후가 호감형이었을지언정, 여성성이 제거된 이 같은 여걸은 톱스타가 되지는 못했다. 이제 '천추태후'는 고려 목종(이인)이 즉위함에 따라 천추태후 시대의 막을 열고, 채시라는 그간 갑옷을 통해 보여주었던 여전사 잔다르크의 이미지에서 매혹적인 클레오파트라로의 변신을 보여주고자 한다. 제작 관계자는 "앞으로 극에서 채시라의 아름답고 여성적인 모습을 더욱 조명할 것"이라고 전했다. 앞으로 '선덕여왕'의 관건은 미실이라는 매력 절정의 여걸을 넘는 또 한 명의 여걸 선덕여왕(이요원)을 어떻게 그려내며 힘을 조율하는가에 있다. '천추태후'는 여성성이 살아있는 여걸이란 점을 부각해 여걸의 美를 표현하는 것이 관건이다. 특히 여걸 사극이 여성 시청자들 뿐만 아니라 남성 시청자들에게도 어필하기 위해서는 여성성과 남성성을 동시에 지닌 이중적 캐릭터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nyc@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