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골든 글러브 시상식이 열렸던 지난해 12월 11일. 시상식장을 향해 가던 도중 자율 훈련을 위해 잠실 구장을 찾은 민병헌(22. 두산 베어스)을 만난 적이 있었다. 다소 추레해 보이는 듯한, 트레이닝 복 차림으로 가방을 옆에 두른 채 구장으로 향하던 그는 "올해(2008년) 못했잖아요. 그러니 지금 열심히 해야죠"라며 웃어 보인 뒤 발걸음을 옮겼다. 시즌 개막 전 톱타자로 낙점받았으나 이후 부진과 두 번의 골절상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냈던 그였기에 더 붙잡고 질문 공세를 퍼부을 수 없었다. 그리고 2009시즌. 민병헌은 아직 확실하게 주전 우익수 자리를 되찾지 못한 상태다. 2년 간의 병역 공백을 딛고 복귀한 베테랑 임재철(33)이 시범경기서부터 매서운 배팅 능력과 뛰어난 수비력으로 주전 우익수 자리를 꿰찼기 때문. 시즌 성적 또한 2할3푼8리 9타점 7도루(11일 현재)로 아쉬움이 있는 것이 사실. 그러나 민병헌의 경기력이 결코 뒤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지난 11일 잠실 LG전서 민병헌은 오래간만에 9번 타자 겸 우익수로 선발 출장, 3-3으로 맞선 8회말 2사 2루서 이재영(30)을 상대로 결승 1타점 좌익선상 2루타를 때려내는 등 4타수 2안타 1타점을 기록며 팀의 4-3 진땀승을 견인했다. 민병헌의 결승타 장면에는 그의 달라진 노림수 타격이 빛을 발했다. 이전까지 직구를 노린 타이밍에 변화구가 날아와 고전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던 민병헌은 초구 포크볼(120km)에 헛스윙한 이후 2구 째 직구(146km)를 기다리며 이재영의 수를 간파했다. 변화구-직구로 볼카운트 1-1을 만든 만큼 3구 째서 떨어지는 변화구를 예상했던 것. 그의 계산은 적중했다. 민병헌은 3구 째 가운데로 몰린 포크볼(111km)을 그대로 당겨쳤고 이는 3루수 정성훈(29)의 글러브를 외면하며 좌측 파울 라인을 타고 흐르는 결승타가 되었다. 경기 후 민병헌은 "초구부터 직구를 노렸었는데 변화구가 날아와서 '2구 째를 기다려보겠다'라고 지켜봤는데 직구가 날아왔다. 솔직히 2구 째도 변화구를 예상했는데 직구가 나와 그 순간 타격 노선을 바꿨다"라고 밝혔다. 뒤이어 그는 "3구 째 포크볼이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을 염두에 두고 휘둘렀는데 노림수가 맞아 떨어졌다"라며 "그동안 팬들 앞에 보여준 것이 없었는데 일찍 구장에 도착해 열심히 훈련한 것이 타격 자신감을 일깨운 것 같다"라는 말로 자신의 활약에 스스로 뿌듯해 했다. 민병헌은 비시즌서의 성실함을 이어가며 올 시즌에도 가장 먼저 잠실 구장에 도착하는 선수 중 한 명이다. 홈경기시 오후 4시 30분 경까지 구장서 배팅 연습을 마친 이후에도 실내 연습장서 계속 연습을 거듭하며 노력한 결과가 11일 결승타로 이어진 것과 다름없었다. "일찍 와서 김광림 코치님과 정말 열심히 훈련했다. 그 덕분에 타석에 들어설 때도 자신감이 높아진 것 같다"라고 밝힌 민병헌은 "지금 현재 스타팅 멤버가 아닌 만큼 출장 기회를 얻었을 때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팀 승리에 공헌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는 말로 각오를 불태웠다. 부단한 연습이 값진 성과를 가져다주는 것은 모든 세상의 이치 중 하나다. 지난해 너무도 힘든 시기를 겪었던 민병헌의 결승타는 그의 성장을 볼 수 있었기에 팬들에게는 더욱 뜻깊은 장면이었음에 틀림없다. farinelli@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