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남원의 영화산책] 올해 한국영화가 달라졌다. 흥행 성적 뿐 아니고 관객 반응도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다. 상반기 들어온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과의 맞대결에서도 밀리기는 커녕 들배지기로 뒤집는 괴력을 발휘하는 중이다. 초유의 위기라며 신음하던 한국영화가 갑자기 빵빵 터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 째는 역시 스토리의 힘이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명언이 있다. '좋은 시나리오에서 나쁜 영화가 나올수는 있지만 나쁜 시나리오에서 좋은 영화는 나올수 없다'고 했다. 영화에서 소재를 포함한 시나리오의 중요성이 얼마나 큰 지를 잘 설명하는 얘기다.
2008년 후반부터 한국영화의 스토리텔링은 훨씬 참신하고 다양해졌으며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선보였다. 30대 인기 DJ가 어느날 20대 초반 아가씨와 유치원생의 깜짝 침입으로 놀란다. 당연히 뻔한 첫 사랑이나 불륜 상대일줄 알았던 불쑥 방문녀가 사실은 딸이고 손자라니. '과속스캔들'의 700만 관객 대박은 관객의 고정 관념을 무너뜨리는 파격 스토리에서 시작됐다.
최근 한 영화 전문사이트가 조사한 설문조사에서도 관객들이 영화를 고를 때 가장 중요시하는 요소로 '줄거리'가 꼽혔다. 요즘 한국 관객들은 주연 배우나 감독, 제작비 규모 등 겉치레 포장 보다는 내실을 더 따진다는 방증이다.
'과속 스캔들'에 이어 감동 다큐멘터리 '워낭소리', 코미디 첩보물 '7급 공무원'이 올 봄 극장가를 달궜고 '마린보이' '작전' '박쥐' 마더' 등 온갖 장르와 소재의 수작들이 스크린을 오가는 중이다. 그 와중에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계절이라는 초여름, 농촌 형사 액션물(?)을 표방하는 '거북이 달린다'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7월에는 이범수 조안의 웃음과 눈물이 어우러진 '킹콩을 들다', 8월에는 하정우의 '국가대표' 등 감동 스포츠 수작들이 대기중이다.
입소문에 힘입어 개봉 2주차 100만 관객을 돌파하는 '거북이 달린다'의 깜짝 성공 이유가 바로 두 번째 답이다. 관객을 확실히 웃겨주는 웃음 코드다. '과속스캔들'과 '7급공무원' 그리고 '거북이 달린다'는 10분에 한 번씩 관객들의 배꼽을 잡게 만드는 코미디물이다.
싸구려 조폭 코미디나 흥행영화 아류작들에 질색했던 관객들도 뛰어난 위트와 재치로 승부하는 작품에는 아낌없이 입장권을 팔아줬다. 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고생하는 소시민들이 코미디 영화를 더 선호한 것도 돌풍의 한 요소로 꼽히고 있다.
세 번째는 극심한 투자 가뭄으로 충무로 돈줄이 마르면서 오히려 양질의 한 번 걸러진 영화 위주로 극장 개봉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영화 르네상스의 거품이 최고조에 달했던 2007년은 오히려 최악의 위기를 자초한 해였다. 제작사 입장에서는 한 해 무려 110편의 영화가 쏟아지는 공급 과잉으로 열 편 중 한 편은 쪽박을 찼고 관객 입장에서는 도저히 참고 봐주기 힘든 허섭쓰레기들의 난무로 한국영화에 대한 애정을 잃었다.
결국 한국영화가 빵빵 터지는 이유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엄선된 웰메이드 수작들이 관객과 만나 행복 바이러스를 전파시킨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OSEN=엔터테인먼트팀 부장]mcgwir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