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런 타자' 페타지니, 기습 번트 시도한 사연
OSEN 기자
발행 2009.06.26 07: 53

[OSEN=박종규 객원기자] 궁지에 몰린 홈런 타자, 체면 불구하고 기습 번트를 시도했다. LG 트윈스의 강타자 로베르토 페타지니(38)가 때 아닌 기습번트로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 언제나 강하게 당겨치는 타격 때문에 상대 수비수들이 시프트 수비를 펼치자 명성에 걸맞지 않는 번트까지 시도한 것이다. LG와 히어로즈의 경기가 열린 지난 25일 잠실구장. 페타지니는 6회 공격에서 선두 타자로 들어섰다. 장원삼을 상대한 페타지니는 초구에 갑자기 번트를 댔다. 몸을 낮추지 않고 엉성한 폼으로 맞춘 타구는 3루 베이스 쪽으로 굴러갔다. 파울라인 근처를 지나 3루 베이스에 맞을 뻔했으나, 3루수 황재균이 가까스로 공을 낚아챈 덕분에 파울이 됐다. 페타지니는 2구째에도 연거푸 번트를 시도했다. 이번에는 뒤쪽으로 벗어나는 파울이 됐다. 결국 페타지니는 볼카운트 2-1에서 6구째 바깥쪽 공에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나고 말았다. 페타지니는 왜 기습번트를 시도했을까. 장원삼을 공략하지 못해서 번트라도 대고 살아나가려고 한 것은 분명 아니었다. 이유는 바로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3루 쪽의 빈 공간 때문이었다. 히어로즈 내야진이 극단적인 시프트 수비를 펼친 탓이었다. 히어로즈 내야진은 페타지니 타석에서 오른쪽으로 치우친 수비를 펼쳤다. 1루수가 파울라인 근처에 서고, 2루수는 우익수 쪽으로 후퇴하고, 유격수는 2루 베이스 뒤에 섰다. 그리고 3루수는 유격수 위치에 서게 되니 정상적인 3루수의 위치는 포기하는 셈이었다. 일명 ‘페타지니 시프트’ 였다. 외야수들도 페타지니의 타석 때는 모두 담장 쪽으로 후퇴했다. 전체적으로 볼 때 그라운드가 꽉 차는 느낌. 포수-투수-유격수-중견수가 이루는 ‘일자 센터 라인’ 도 인상적이었다. 전날(24일) 경기에서 페타지니는 이러한 시프트 수비에 두 번이나 당한 기억이 있었다. 1회 첫 타석과 8회 마지막 타석에서 2루수 쪽으로 강습 타구를 날렸으나, 외야 잔디 위에서 기다리고 있던 2루수 김일경에게 잡혀 아웃된 것이다. 김일경의 1루 송구가 유난히 길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게 시프트 수비의 벽에 막히자, 번트라도 대서 난국을 헤쳐 나가려고 한 모양이다. 한편으로는 전날 당한 것이 억울해서 ‘내가 이렇게라도 할 수 있다’ 는 것을 보여준 행동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홈런을 펑펑 날리며 LG팬들 사이에서 ‘페타신’ 으로 추앙받는 페타지니. 팀의 승리를 위해서라면 번트도 마다않는 그의 희생정신을 엿볼 수 있었다. 그래도 그에게 어울리는 것은 강타자답게 시프트 수비의 틈을 꿰뚫는 안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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