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요? 그 친구들이 저를 스승으로 생각해 준다면야..." 제자에게 배신감을 느끼지 않느냐는 질문에 박항서(50, 전남 드래곤즈) 감독이 말 끝을 흐리며 내놓은 대답이다. 박항서 감독은 지난 28일 K리그 13라운드 포항 스틸러스와 경기를 앞두고 기자들과 만난 자리서 도의를 저버리고 사우디아라비아행을 고수한 이천수(28)를 비난하는 목소리를 최대한 낮추려 애를 썼다. 박 감독은 이따금씩 "그 친구가 나를 힘들게 하네요. 약속한 부분은 책임졌어야 합니다"라며 서운한 기색을 표시하긴 했지만 오히려 "제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 있다면 져야죠, 그래도 유종의 미를 거뒀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말로 이천수를 최대한 감싸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특히 이날 이천수가 엔트리서 빠진 이유를 묻자 박 감독은 "2군서 훈련 중 사타구니 부상을 당했습니다. 선수가 부상을 당했을 때 배려하는 것이 우선이죠. 정상 컨디션이었다면 5분 혹은 10분이라도 전남 선수로 뛰게 했을 겁니다"라며 자초지종을 설명해줬다. 그러나 한 언론사는 경기 전날 이천수가 박항서 감독에게 항명하고 코칭스태프와 마찰을 빚은 뒤 무단 이탈했다고 보도했고 이에 대해 전남의 구단 관계자 역시 29일 아침 사실은 맞지만 아직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이것이 정녕 올 시즌 무적 선수로 전락할 뻔했으나 구단의 절대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던 박항서 감독에게 이천수가 할 수 있는 행동일까. 보도 내용과 구단 관계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아무리 이천수의 입장에서 이해해 보려 해도 수긍이 가지 않는 행동이 벌어지고 말았다. 한때 범재가 아닌 천재라 불렸고 그의 발 끝에 여러 사람들의 꿈이 담겨 있어 쉽사리 포기하지 못했던 사나이가 이제는 막다른 골목에 섰다. 동양 최고의 철학서인 주역(周易)에는 "달이 차면 기울고 겨울이 길면 봄이 온다"는 글귀가 적혀 있다. 과연 이천수에게도 봄이 찾아 올까. parkrin@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