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수는 정말 죽어라 열심히 한 선수다. 그런 선수가 빛을 봐야 한다". 고교 졸업 시절 또래 최고의 좌타자로 인정받고도, 지명에서 외면당했던 그가 프로 입문 4년차에 '최고 별'이 되었다. 가파른 성장세로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김현수(21. 두산 베어스)가 올스타 역대 최다 득표라는 기염을 토했다. 김현수는 지난 12일 개표가 끝난 2009 CJ 마구마구 올스타 투표에서 투표 개시 이후 7주 연속 1위를 차지한 끝에 총 76만1290표를 얻으며 최다득표 선수가 되었다. 지난해 카림 가르시아(34. 롯데)의 67만8557표를 뛰어넘어 역대 최다득표자로 이름을 올린 것. 올 시즌 3할6푼4리(2위, 13일 현재) 16홈런(공동 4위) 62타점(4위)을 기록하는 동시에 총 103개(1위)의 안타를 때려내며 2년 연속 최다안타왕을 향해 달리고 있는 김현수는 "팬들로부터 인정받았다는 데에 더욱 기분이 좋다"라는 말로 기쁨을 표시했다. 불과 4년 전 프로 스카우트들로부터 외면당한 선수가 팬들에게 인정을 받은 순간이었다. 신일고 3학년 시절이던 지난 2005년 이영민 타격상을 수상하고도 프로 지명을 받지 못했던 그에게는 '발이 느리고 수비력이 나쁘다'라는 편견이 있었다. 이미 1학년 시절이던 2003년 서울시 추계리그서 MVP, 타격, 타점 타이틀을 휩쓴 뒤 졸업 시까지 팀의 중심 타자로 이름을 날렸고 외야로 전향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2005년 봉황대기 경주고 전서 머리 위로 빠르게 날아드는 직선 타구를 20여 미터 전력 질주로 정확히 잡아내는 호수비를 보여주기도 했던 김현수에게는 치욕과도 같은 평이었다. 고려대를 비롯한 대학 팀의 러브콜이 줄을 이었으나 그는 신고 선수의 길을 택했다. 당시에 대한 질문에 김현수는 "당시 제가 하는 야구는 고려대 스타일과 조금 거리가 있었던 것 같아요"라며 농을 던진 뒤 "조금 더 일찍 프로 무대에 발을 내딛고 야구 인생을 이어가고 싶었다"라며 입술을 깨물었다. 두산에 신고선수로 입단한 후에도 김현수의 고난은 계속 되었다. 당시 함께 신고 선수로 입단한 선수 중에는 어깨 부상으로 인해 지명서 외면당했던 부산고 출신 특급 좌완 고병우와 휘문고 2년 시절 이미 145km의 묵직한 직구를 구사한 우완 안도형이 있었다. 걸출한 동기생이 많을 수록 정식 등록 가능성이 줄어드는 신고 선수 꼬리표에도 불구, 김현수는 독을 품은 자세로 2군 생활을 견뎌낸 뒤 결국 정식 계약에 성공했다. 당시 김현수를 지켜본 두산 육성군 코칭스태프는 하나같이 김현수의 성실성을 칭찬했다. 그저 열심히 한 정도가 아니라 '저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라는 모습으로 스윙 연습에 열을 올렸다는 평이다. 2007시즌 초 '김경문 감독의 양아들'이라는 혹평 속에서도 출장 기회를 잡았던 그는 99경기서 2할7푼3리 5홈런 32타점을 올리며 가능성을 비춘 뒤 이후 국내 최고 좌타자 중 한 명이 되었다. 지난 시즌 3할5푼7리(1위) 9홈런 89타점(5위)의 성적은 부단한 노력의 산물이다. 지난해 감독 추천 선수로 꿈의 제전에 첫 출장한 후 1년 만에 당당히 팬 투표를 통해 올스타전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게 된 김현수는 여전히 성실한 자세로 동료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최고 스타'의 반열을 향해 큰 걸음을 내딛고 있는 그의 미래가 더욱 궁금한 이유다. farinelli@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