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 박중훈, 연기력 논란 아쉽다
OSEN 기자
발행 2009.07.29 10: 09

[손남원의 영화산책] 올 여름 극장가에서 한국영화 '해운대'가 흥행 돌풍을 일으키는 중이다. 영화 소재인 쓰나미처럼 제 철 만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을 무서운 기세로 쓸어버리며 개봉 5일만에 150만명 관객을 불러모았다. 영화 '해운대'의 힘은 거액을 들여 완성한 쓰나미 CG가 아닌 '두사부일체' 윤제균 감독의 웃고 울리는 이야기와 주조연배우들의 열정적인 연기에서 나온다. 윤 감독 자신이 개봉전 언론 시사회 때 "쓰나미는 잠깐 나온다. '해운대'는 사람 사는 이야기"라고 강조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윤 감독은 국내에서 상업영화를 제대로 만들줄 아는 몇 안되는 감독 가운데 한 명이다. 웃고 울리는 뻔한 연출 방식으로 먹고 산다는 일부 비난도 있지만 그의 영화에는 늘 관객들이 몰린다. 적어도 감독의 자기 만족이나 해외 영화제 등 젯밥에 관심을 두지않고 관객의 두 시간을 위한 영화 연출에 전력을 기울이는 까닭이다. 그런 그가 자신있게 내놓은 첫 블록버스터 '해운대'는 보고 즐기는 재미가 쏠쏠하다. 드라마를 너무 압축시켰다, 감동과 눈물을 강요한다, 윤제균 식 흥행 규칙의 반복일 뿐이다 라는 비평들을 그냥 무시해도 좋을 정도의 포만감을 안기는 영화다. 배우들 연기도 영화와 잘 어우러져 오감을 자극한다. '이제는 연기 스타일이 읽힌다'는 우려를 들었던 설경구는 거친 바다 남자면서도 나이 어린 짝사랑 연희(하지원 분) 앞에서 늘 고개 숙이는 주정뱅이 만식 역을 모처럼 맛깔나게 선보였다. 또 '해운대'를 제대로 살린 배우들로 김인권과 이민기를 꼽을 수 있다. 만식과 같은 배에 탔던 동네 후배 오동춘 역 김인권은 약간 덜 떨어진 듯한 건달이자 한량으로 나서 '말죽거리 잔혹사' 찍새 역을 능가하는 생애 최고의 명연기를 펼쳤다. 이름 듣고 모르지만 얼굴 보면 무릎 치게 만드는 명품 조연의 전형이다. 강하면서도 약한 부산 사나이 최형식 역 이민기도 제 몫 이상을 했다. MBC 베스트극장 '태릉선수촌'부터 주목을 받았던 그의 잠재력은 '해운대'를 만나서 돌고래마냥 수면 위로 높이 솟구쳤다. 관객을 계속 웃기다 끝내 울리고 마는 연기는 절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런 '해운대'의 옥에 티는 대한민국 대표배우 박중훈의 아쉬운 연기다. 1980년대 이후 오랫동안 톱스타 자리를 굳건히 지켰고 할리우드에도 진출했던 그로서는 이번 영화가 첫 조연(한국영화로는)이나 마찬가지다. 박중훈 자신이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름이 세번째로 나오니 살짝 서운했다"는 소감을 밝혔다. 그는 또 자기 이름을 건 TV 토크쇼를 맡았던 영화배우다. 그만큼 인맥도 넓고 선후배 동료 연기자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인물이다. 대한민국 박중훈이기에 연기력 시비란 늘 다른 나라 일, 다른 배우 일로만 여겨졌던 탓일까. '해운대'에서 박중훈은 쓰나미 피해를 가장 먼저 예상한 지질학자로 등장한다. 재난영화에 꼭 등장하는 바로 그 박사 역할이고, 조연이라지만 주연 이상으로 관객의 몰입을 책임지는 캐릭터다. 그러나 그의 연기는 영화 도입부에서부터 초점이 안맞았다. 지질학자 김휘가 쓰나미의 위험을 정부 당국자들에게 알리는 첫 장면. 기상이변에 둔감한 공무원들을 설득하다 벽에 부딪히는 김휘의 모습은 뭔지 모르게 어색하고 낯설다. 길고긴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지적인 배역이 적었던 때문일지도 모를 일이다. 여기에 대사 처리와 발음도 부정확했다. 안성기와 함께 1980~1990년대 한국영화를 이끈 산증인이라고 믿기 힘들 수준이었다. 일부 장면에서는 웅얼거리는 그의 입술을 바라보며 차라리 자막을 보여달라고 외치고픈 마음이 굴뚝 같았다. 다행히 영화 후반부, 헤어진 아내 유진(엄정화)과 어린 딸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장면부터 그의 농익은 연기는 빛을 발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쉽고 안타깝기만한 사실은 박중훈의 이름값에 거는 관객 기대치가 그보다 훨씬 위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OSEN=엔터테인먼트팀 부장]mcgwire@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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