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로 배낭여행을 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대학생들은 방학을 이용해 몇 달씩 커다란 배낭을 메고 세계 곳곳을 누비며 젊은 날의 추억을 만들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해외여행이 자율화된 것은 불과 20년 전인 1989년. 그새 배낭여행은 젊은이들이 꼭 해봐야 하는 필수 항목이 되었다. 세계를 돌아다니며 여행을 하다 지금은 국제구호개발기구 월드비전에서 긴급구호팀장을 하는 한비야. 그의 저서인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을 보면 당장이라도 짐을 싸고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여행길에 만나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문화체험은 배낭여행을 떠나는 이들이 꼭 읽어봐야 할 바이블처럼 여겨진다. 책에는 ‘배낭여행을 가는데 딱 한 곳만 추천한다면?’이란 질문을 자주 받는다고 나온다. 그의 대답은 주저 없이 ‘인도’. 이미 많은 여행객이 다녀왔지만 해마다 인도를 찾는 한국인의 숫자는 늘어난다. 독특한 생활방식과 다양한 문화, 싼 물가로 배낭여행객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 그러나 ‘인도’하면 커리나 간디와 함께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카스트’란 신분제도가 떠오른다. 힌두교 특유의 신분제도로 사람을 브라만(사제), 크샤트리아(군인), 바이야(농공업), 수드라(노예) 네 계층으로 나누고 계급별 수직 이동이 불가능하게 하여 통치가 쉽도록 만든 것이다. 그러나 이들보다 못한 사람들도 있다. 카스트 네 계급에도 속하지 않는 불가촉천민으로 그림자가 겹치거나, 같은 우물의 물만 마셔도 더러워진다 하여 마을 밖에서 생활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물론 현대에 들어서 이런 카스트제도는 법으로 금지됐다. 그러나 아직도 겉으로는 쉽게 드러내지 않는 카스트에 대한 의식들이 뿌리 깊게 박혀있다. 다른 계급끼리의 혼인은 있을 수 없으며 만약 결혼을 한다면 가족에게 버림을 받는다.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면 얼굴과 온몸에 천을 감고 망태를 메고 쓰레기를 줍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자신들이 내쉰 공기조차 더럽다고 여겨져 더운 여름에도 얼굴을 가리고 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카스트는 인도의 성장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라 전문가들은 말한다. 카스트는 원래 아리아인들이 인도대륙으로 이주하면서 원주민들과 자신들을 구별하기 위해 피부색으로 분류한데서 기원했다. 아리아인들의 피부색은 백인에 가까웠고 원주민인 드라비디아인은 검은 피부색을 가지고 있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지배계급으로서 우월성과 혈통의 순수성을 보존하기 위해 피부색에 의한 계급제도를 만든 것이 카스트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인도인들은 하얀 피부를 유독 동경한다. 각종 미백닝 제품들이 존재하고 그 기능성 또한 뛰어나다. 인도를 여행한 여성 여행자라면 누구나 아는 미백 크림이 있을 정도. 악법이라 비판받는 카스트가 신의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닌 단순한 피부색의 차이일 뿐인데도 사람들은 아직도 그것에 집착하고 흰 피부가 좋다고 생각한다. 피부과 전문의 조성인 원장(테마피부과)은 “피부색이 검다는 것은 피부가 유해요소에 공격받았을 때 대응하는 일종의 방어 작용”이라고 말한다. 오히려 너무 피부가 흰 사람은 상대적으로 피부암이나 치명적 손상을 받기 쉽다는 얘기. 바꿔 얘기하면 오히려 흰 피부색보다 검은 피부색이 건강하고 면역력이 높은 ‘좋은’ 피부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피부색은 인종을 구분하는 방법이기는 하나 그것으로 우열을 가리고 계급을 나누는 우매한 사고방식은 카스트란 제도를 낳았고 인종차별이란 폐해를 만들었다. 인도인들이 카스트 제도와 그에 의해 가지게 되는 흰 피부에 대한 집착을 버릴 때 10억 인구 ‘인도’는 배낭여행자들의 천국이자 중국을 뛰어넘는 강대국이 되지 않을까? /OSEN=생활경제팀 osenlife@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