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짧게 자르긴 처음이에요". SK 이호준(33)이 모처럼 활짝 웃어보였다. 이호준은 29일 목동 히어로즈전에서 4-2로 뒤져 패색이 짙던 8회 선두타자로 나서 우측 담장을 넘기는 솔로아치를 그렸다. 자신의 시즌 13번째 홈런보다 팀 추격의 발판을 마련한 대포라는 의미가 더 컸다. 결국 정상호의 역전 투런아치가 터져 나와 이호준의 홈런은 더욱 빛을 발했다. 경기 후 이호준은 "경기 전 감독님을 따라 정근우, 최정과 함께 인천 인하대에서 특타를 하고 왔다"면서 "자꾸 중심이 뒤로 가 반대로 중심을 앞으로 옮기는 연습을 했다"고 밝혔다. 특히 이호준은 "2시간 반을 쉬지 않고 쳤다. 어느 정도 타격감을 잡은 것 같다"면서 "감독님과 한 지금까지의 일 대 일 특타 중 가장 기억에 남을 것"이라고 말해 특타 강도가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할 수 있도록 했다. 올 시즌을 앞두고 이호준의 각오는 대단했다. 2007년 팀 창단 첫 우승으로 이끈 후 4년간 34억 원이라는 FA 대박을 터뜨리며 팀에 잔류했지만 왼무릎 수술로 곧바로 시즌을 접어야 했다. 작년에 고작 8경기에 나와 타율은 2할에 그쳤다. 올해는 야심차게 4번타자로의 복귀를 준비했다. 하지만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타격부진으로 지난 6월 14일 2군으로 떨어졌다가 지난 5일에야 다시 1군으로 올라왔다. 장타율 5할2푼8리로 4번다운 위용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타율도 2할9푼8리로 나쁘지 않다. 하지만 정작 득점찬스 때마다 고개를 숙여 팬들의 질타를 한몸에 받았다. 특히 7월 한달 동안 득점권 타율이 전날까지 1할8푼2리에 불과했다. 게다가 전날에는 팀이 선두에서 3위로 떨어졌다. 처음에는 애써 담담하게 받아들였던 이호준이었다. 그러나 차츰 동료들의 긴장을 풀어주던 구수한 사투리 수다도 뜸해졌고 팀이 7연패에 빠졌을 때는 홈런을 치고도 미소조차 짓지 않을 정도로 과묵한 표정을 지었다. 최근에는 4번을 박재홍에게 넘기고 3번으로 주로 나서고 있다. 그러자 이호준은 "그동안 모든 것을 너무 쉽게 생각한 것 같다"며 스스로에 대해서도 엄격한 자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때문인지 이호준은 지난 28일 후반기 첫 경기에 앞서 머리를 삭발에 가깝게 바짝 자르고 나타났다. 스스로도 "고등학생 때 이후 이렇게 짧게 자른 적이 없다"고 말할 정도다. 그만큼 각오를 새롭게 다졌다. 이호준은 짐을 싸들고 경기장을 나서며 "역시 머리를 짧게 잘라야 하나보다. 전까지는 자주 머리를 짧게 깎았는데 고참이 되고 나서는 되도록 안그럴려고 노력했다. 역시 잘라야 잘하나보다. 어차피 1주일 동안 원정경기라 집사람이나 아이들이 놀라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그렇다고 '삭발투혼'이라고 쓰지 말아달라. 쑥스럽다. 후배들에게도 나처럼 깎으면 안된다고 신신당부했다"고 외쳤다. 스스로의 무장을 나타내는 '삭발'에 김성근 감독의 '특타'라는 외부의지까지 소화한 이호준이 4번타자의 부활로 이어질지 관심이 모아진다. letmeout@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