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과장이 휴가에도 출근하는 이유
OSEN 기자
발행 2009.08.08 10: 19

중소기업에 다니는 김 과장(38)은 이번 여름 휴가철에는 휴가를 가지 않고 회사에 출근하기로 작정했다. 지난해 여름, 강원도 계곡으로 휴가 갔다가 괜한 회사 걱정(?)으로 단 하루도 맘 놓고 쉬지 못한 탓이었다. 물론 휴가를 못갈 만큼 업무가 몹시 밀린 것은 아니었다. 단지 회사에 출근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왠지 불안한 까닭이다. 쉬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일을 하는 것도 아닌 어중간한 상황이다 보니 가족에게 방해만 줬다. 올 휴가철에는 또 그럴 바에야 회사에 나가는 것이 여러모로 낫다는 판단을 했다. 과거 선배들이 정식 휴가원을 제출하고도 느닷없이 회사로 “별 일 없냐?”며 전화를 걸어오거나 오후에 불쑥 출근하는 것을 심심찮게 지켜본 김 과장은 당시만 해도 그런 선배들이 한심하다고 비아냥댔는데 자신이 바로 그 처지가 됐다는 사실에 쓴 웃음이 나왔다. 이것은 비단 김 과장만의 경우는 아니다. 정기적인 여름 휴가철에도 맘 놓고 쉬지 못하는 직장인들이 적지 않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회사원들의 올 여름 휴가는 2.9일로 작년의 3.8일에 비해 하루 정도 줄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 ‘쥐꼬리’만한 휴가마저 온전히 쓸 수 있는 이가 많지 않다니 직장인의 우울한 초상이 아닐 수 없다. 사실 휴가철뿐만이 아니다. 평소 주말에도 가만히 쉬는 것 자체를 죄악으로 여기며 불안해하는 직장인들도 부지기수다. 일을 즐겨서도 아니다. 다만 일하지 않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결국 맘 놓고 쉴 수 있을 때는 손 하나 까딱할 수 없을 만큼 일하면서 완전 탈진한 경우다. 쉬는 것도 얼른 기력을 회복해 다음날 또다시 정상적인 업무에 복귀하기 위해서다. 대다수 직장인이 쉬면 불안한 이유는 무엇일까? 강수돌은 ‘일중독에서 벗어나기’에서 “일중독은 두려움을 회피하기 위한 자기 방어 수단으로 등장한 것”이라면서 “한국 사회의 경우 식민지 경험과 미군정기, 한국 전쟁을 통해서 진보 세력이 절멸한 상태에서 반공주의와 성장주의 이데올로기가 가치관을 지배하면서 ‘게으름이나 여유 부리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나쁜 것’… 이라고 배워왔다”고 진단한다. 일하면서 피폐해지는 대한민국 직장인들의 고달픈 현실을 예리하게 파헤친 직장인 ‘자기점검서’이자 ‘자기계발서’인 하루테크는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쉬고 있으면 남에게 멀찍이 추월당해 생존게임에서 패하고 만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경쟁만능’과 ‘효율만능’, 그리고 ‘성장만능’이라는 신자유주의의 3가지 칩을 몸속 깊숙이 장착하면서 숨통이 끊어지지 않는 한 쉬지 않고 무조건 달려야 하는 지옥의 레이스에 임하고 있는 형국이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렇다. 첫 번째는 경쟁만능이다. 너도나도 ‘생존경쟁’, 아니 ‘생존전쟁’을 외친다. 무조건 남에게 이겨 살아남는 게 지상 과제다. 내가 쉬면, 남은 한발 앞선다. 결국 경쟁에서 지고 만다. 이런 상황에서 쉰다는 것은 사치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총력전을 벌여야 한다. 두 번째는 효율만능이다. 한마디로 시간은 돈이다. 단 시간 내에 많은 일을 해야 한다. 한데 천금 같은 시간에 두 손 놓고 있다면 될 법한 소리인가. 몸을 움직여 뭐든 해야 한다. 그래야 생산적이고 효율적이다. 지쳐 쓰러지지 않는 한 끊임없이 움직이고 활동해야 한다. 마지막은 성장만능이다. ‘진화만이 살 길’이라는 수사는 우리를 ‘빡세게’ 이끈다. 살아 있다면 우리는 성장과 발전을 향해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쉰다는 것은 멈춤이며 지체를 뜻한다. 심하면 인생의 답보요, 패배를 의미한다. 이러하니 어디 쉴 틈이 있으랴! 하루테크의 저자 최문열은 진심어린 충고를 가한다. “워낙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무리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구조이긴 하다. 또 조직은 암묵적으로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이에게 성실하다고 추켜세우며 더욱 조장하는 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적당한 휴식과 여유 없이 힘겹게 몸으로 때우다보면 창의적으로 일하는 것은 요원하다. 일에 대한 성과도 극히 낮을 뿐 아니라 일에 대한 즐거움도 사라진다. 매진과 탈진만을 반복하는 이중모드로 살다간 정형화된 틀에 갇혀 지독한 무기력증에 빠질 수밖에 없다. 새로운 것을 모색하거나 도전할 여력도 없다. 이러다보면 조직은 물론 개인에게도 엄청난 손해로 되돌아온다.” 100c@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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