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는 홈런이 한 자릿 수 였잖아요. 제가 준족처럼 생긴 것도 아니고"(웃음).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욕심낼 수는 있어도 한꺼번에 잡기는 힘든 일이 세상의 이치다. 김현수(21. 두산 베어스)가 올 시즌 주루 플레이를 자제하는 데 대한 이유를 밝혔다.
올 시즌 3할5푼5리(3위, 19일 현재) 19홈런(공동 10위) 79타점(4위)을 기록하며 지난해에 이어 여전히 팀의 중심 타자로 활약 중인 김현수. 그러나 도루 갯수는 지난해 13개에서 6개로 뚝 떨어졌다.
지난 시즌 초 김현수는 2번 타순서 적극적으로 도루를 시도하는 등 과감한 주루 플레이를 보여주기도 했다. 신일고 시절 '방망이는 좋지만 발이 느려 수비 범위가 좁다'라는 편견 속에 겪은 미지명 수모를 씻기 위해서인지 지난해 김현수는 도루 시도 외에도 상대 수비 빈 틈을 틈 타 추가 진루하는 모습을 더러 보여주었다.
그러나 올 시즌은 다르다. 지난 시즌 중반부터 붙박이 3번 타자로 나서고 있는 김현수는 최대한 뛰는 것을 자제하고 있다. 11번 도루를 시도해 6번을 성공시키며 도루 성공률 54.6%을 기록 중으로 시도 횟수가 감소한 동시에 성공률도 뚝 떨어졌다. 최근에는 승부처에서 주루사를 당하며 팬들의 아쉬움을 자아내기도 했다.
지난 18일 잠실 LG전 3-5로 뒤진 8회말서 김현수는 2루 도루를 성공시킨 뒤 3루 진루 후 1루 주자 임재철(33)과 함께 이중 도루를 시도했다. 김현수는 올 시즌 중반까지 팀 동료였던 포수 이경환(26)이 2루로 송구하려는 동작에 맞춰 무게 중심을 홈 쪽으로 옮겼으나 이경환의 속임 동작에 걸려 3루서 횡사했다. 당시 장면에 대해 이야기하자 김현수는 살짝 눈을 흘기면서 이렇게 답했다.
"제가 잘못한 거죠. 1,3루에 주자가 있던 상황인만큼 상대가 이중 도루에 대해서 염두에 두고 있었을 텐데 동작 하나에 너무 성급하게 걸음을 옮겼으니까요".
뒤이어 김현수는 "필요한 상황이 아니면 되도록 뛰지 않으려 한다"라며 자신의 현재 위치에 더욱 충실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3번 타순에서 앞선 타자들을 수월하게 홈으로 인도하는 것이 본연의 임무임을 강조한 그의 눈빛은 감기로 몸 상태가 좋지 않은 가운데서도 밝게 빛났다. '호타준족이라는 수식어가 욕심나지는 않는가'라며 농을 던지자 김현수는 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답했다.
"제가 발 빠르게 생기지는 않았잖아요.(웃음) 지난 시즌에는 두 자릿 수 도루를 성공시키기는 했지만 홈런도 한 자릿 수였고. 뛰는 역할을 맡지 않았으니 되도록 도루를 자제하면서 타석에서 제 힘을 뿜어내는 데 집중해야죠".
소속팀 두산이 최근 3연패로 주춤하며 선두 KIA와의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는 상황. 감기 증세로 몸이 좋지 않은 가운데서도 자신이 맡은 역할에 충실하겠다는 김현수의 이야기에는 나이 답지 않은 듬직함이 서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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