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남원의 영화산책] 올 여름, 국내 5번째 천만관객 영화가 등장한다. 윤제균 감독의 재난 블록버스터 '해운대'가 그 주인공이다. '해운대'는 개봉전까지 잘되야 700만 관객 정도로 예상됐던 영화다. 충무로 관계자들이 설경구 하지원 박중훈 엄정화 이민기 김인권 등 호화 출연진에 110억원 제작비, 흥행 감독의 연출이라는 3박자를 감안, 후한 인심으로 내다봤던 성적이다. 그러나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해운대'는 19일 전국 11만명의 관객을 모아 누적관객 941만명을 기록, 심형래 감독의 ‘디워’를 제치고 한국영화 역대흥행 5위에 올랐다. 다음 관문 부터는 천만 관객 영화들이다. 또 다른 설경구 주연 영화 '실미도'가 1108만명 동원으로 역대 4위에 올라있다. ‘해운대’의 천만 돌파는 개봉후 불과 23일만에 역대 한국영화 흥행 8위 '웰컴 투 동막골'(800만명)을 넘어서면서 예견됐던 일이다. 당시 '해운대'는 개봉 3주차를 지나고도 예매율이 25.9%에 달하며 한 주 늦게 막을 올린 '국가대표' 27%와 박빙으로 1, 2위를 다투는 등 흥행 관련 각종 지표에 청신호를 킨 바 있다. 여름 방학 성수기를 맞아 평일에도 꾸준히 10만명 이상의 관객을 불러모았고 흥행 속도는 과거 천만관객 영화들과 비교해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 관객 입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데다 장년, 노년층까지 꾸준히 극장문을 들어섰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인구 5천만 대한민국에서 천만명이 한 영화를 극장 관람하려면 이들의 티켓 파워가 반드시 필요하다. '해운대'가 천만관객에 성공할 경우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왕의 남자' '괴물'에 이어 5번째다. 모두 한국영화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등 외화는 단 한 편도 명함조차 내밀지 못했다. 올 7월 개봉전 90%를 넘는 예매율과 평일인 첫 날 54만명 스코어로 각종 영화 흥행 기록을 다시 썼던 '트랜스포머2'도 기세만 요란했을 뿐, 결국 외화 천만관객 1호의 호언장담은 용두사미로 끝났다. 역대 최다관객 기록을 갖고 있는 봉준호 감독의 '괴물'도 첫 날 44만명으로 출발했다. 그렇다면 한국영화들만 천만관객을 동원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천만관객은 영화 자체의 힘으로 가능한 게 아니고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기존 천만관객 영화 4편 모두 10대부터 노년층까지 남녀노소를 불문한 관객 동원으로 기적을 일궜다. "OOO영화는 재밌다더라"는 입소문뿐 아니라 "누구누구도 OOO영화는 봤다더라"는 부추킴까지 있을 때야 벌어지는 현상이다. 이는 한 번 분위기에 휩쓸리면 너도나도 그 대열에 올라타려는 국민 기질에 기인하고 2002 한일월드컵 등에서 그 실례를 입증한 바 있다. 그런 면에서 대부분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는 대상 관객층이 너무 뚜렷하고 선명하다. 초반 흥행 속도가 엄청나게 빠른 것도 개봉을 손꼽아 기달리던 1020 세대들이 앞다퉈 몰려드는 덕분으로 뒷심이 딸릴 수밖에 없다. 어느 수작 외화라도 온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정서를 보여주기란 불가능하다. '왕의 남자'가 조선시대 폭군과 광대를 대비시켜 민초의 동정을 끌어냈고, '실미도'는 독재 시절의 뼈아픈 치부를 들췄으며, '태극기 휘날리며'는 동족상잔의 6.25 전쟁을 다뤘다. 한강을 배경으로 한 '괴물'은 환경오염으로 탄생한 괴수를 등장시켜 경각심을 일깨우는 국민적 공통분모 형성에 성공했다. 여름철 국내 최대 피서객이 몰리는 해운대에 전대미문의 쓰나미가 몰려오는 '해운대'의 설정과 소재가 또 하나의 천만관객 영화를 가능케 하는 비법이었을 게 확실해 보인다. [OSEN 엔터테인먼트팀 부장]mcgwire@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