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까지 따른다.
조범현 KIA 감독은 얼마전 후반기 폭주비결에 대해 흥미있는 말을 했다. KIA는 후반기 25승5패의 경이적 행보를 펼치고 있다. 감독의 입장에서도 그 이유를 생각할 수 밖에 없는데 "올해는 운이 참 많이 따른다"는 것이다.
조 감독은 "페넌트레이스 속성상 팀도 전력의 부침이 있기 마련이다. 특히 전체적인 슬럼프에 빠져있을 때가 중요하다. 만일 그럴때 상대팀이 강하다면 이기기 힘들고 팀이 부진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상대 팀이 동시에 슬럼프라면 해볼만 하다. 올해 KIA가 안좋을때 상대팀도 안좋았다. 운이 좋이 좋다고 볼 수 밖에 없는데 대진운에서 까먹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 일례로 KIA는 김원섭이 부상으로 빠지면서 위기를 맞이한 6월, 12승1무10패로 선전을 했다. 공격력 수비력이 모두 부실해진 시점이었는데 투수력을 앞세워 5할 승률을 넘었고 7월 이후 후반기 쾌속질주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런데 이때 상대팀들이 KIA를 잡을 만큼의 힘이 없었다는게 조 감독의 말이다.
더욱 좋은 운은 역시 '슈퍼해결사' 김상현의 출현이다. 김상현의 MVP급 성적을 기대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조 감독은 "트레이드 당시 황병일 타격코치와 이야기해보니 15~20홈런을 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이 정도로 좋은 활약을 해줄 것으로 솔직히 몰랐다"고 토로했다.
다만 김상현의 경우는 프런트의 전력보강의 능력과 함께 타이밍이 절묘하게 맞았다고 볼 수 있다. 프런트는 일찌감치 힘있는 3루수를 물색해왔고 LG와 협상을 성공리에 마쳤다. 김상현은 3루 자리가 없었다면 이런 성적표는 불가능했고 한국시리즈 직행티켓은 멀어졌을 것이다.
아울러 상대팀이 부상속출로 약해진 운도 따르고 있다. 올해 SK와 두산은 6월까지 양강을 형성했다. 그러나 SK는 포수 박경완과 에이스 김광현이 부상으로 빠지면서 전력이 급격하게 약화됐다. 두산 역시 잦은 부상선수들의 속출, 부실한 선발진을 메워주던 불펜진이 과부하에 걸리면서 실속했다. 힘을 비축한 KIA는 후반기 개막과 함께 힘에 부친 두 팀을 제치고 선두질주를 할 수 있었다. 상대의 부상은 운으로 밖에 볼 수 없는 대목이다.
생각치 못한 승리를 따내는 경우도 있다. 지난 2일 대구 삼성전이 좋은 일례이다. 고졸루키 좌완 정용운을 선발카드로 기용, 크게 승리에 집착하지 않았다. 상대투수가 나이트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반 타선이 폭발하더니 대승을 거두었다. 그동안 착실히 힘을 쌓아온 불펜이 조기출동해 승리했고 매직넘버를 9로 줄였다. 감독들은 이런 경기를 놓고 "경기를 주웠다"는 표현을 쓰는데 딱 그런 모양새였다.
감독 유형 가운데 최고는 용장, 지장, 덕장이 아니라 복장(福將)이라는 말이 있다. 운이 따르는 사람을 도무지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운의 법칙'은 분명히 있다. "운은 아무나 따르지 않는다. 준비하고 실력을 키운 강자에게 따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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