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입었을 땐 못느꼈던 소리‧움직임 표현 날 것의 느낌은 누드 아니고선 불가능해 부모님 보여드리고 배우로 인정받고 싶어 [이브닝신문/OSEN=오현주 기자] 연극 ‘논쟁’ 주연배우 윤채연. 2009년 공연된 수많은 작품들 중에 연극 ‘논쟁’이 그 핵심에 있었다. 초연 당시 작품은 배우들이 알몸으로 등장해 파란을 일으키며 선정적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했다. 그런 이유로 ‘남자와 여자 중 어느 쪽이 더 먼저 변심하는가’를 알아내기 위해, 사회로부터 격리돼 양육된 4명의 성인 남녀가 처음 만나는 과정에서 전하고자 했던 주제의식은 ‘전라노출’이란 이슈 속에 가려져버렸다. 논란 속에 초연을 마친 연극 ‘논쟁’이 2차 공연 중이다. 초연에 이어 2차 공연에서도 주연으로 출연 중인 배우 윤채연을 지난 12일 충무아트홀에서 만났다. 마치 아담과 이브를 연상시키듯 남자 ‘누’를 만나는 여자 ‘나’를 전라로 연기한 그는 작품을 통해 오감이 열리는 체험을 했다고 말했다. 누드로 무대에 서자 감각기관이 예민해지고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이 비로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털어놨다. -출연을 결정하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논쟁’은 최초의 인간이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에 대한 이야기다. 영미권에서는 이미 여러 차례 무대에 올렸던 작품이다. 5∼6년 전 극단 서울공장이 국내에선 처음으로 선정했다. 사실 차기작으로 선정해두긴 했지만 극단에서도 어떻게 무대에 올릴지 지난한 고민을 했던 것으로 안다. 2009년 초 워크숍에 참가하기 전까지는 어떤 작품인지 잘 몰랐다. 당시 그 자리에서 작품에 대한 다양한 소개와 토론이 있었고 여러 차례 논의를 반복해 캐스팅됐다. -역할은 어떻게 만들어갔나. ▲순수하고 맑은 영혼을 가진 사회화되지 않은 인간을 연기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통상 사회적이라고 말하는 습관을 거둬내는 과정이 필요했다. 연습 중 옷을 입고 연기할 때 느끼지 못했던 소리와 움직임이 전라연기에서는 나오더라. 그 후에 인물 자체에 빠지게 됐고 역할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 공연에 앞서 가진 발표회 때 내 앞에 누드로 선 상대배우를 처음 봤는데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만날 때 조건화된 격식을 벗어던진 누드를 통해 인간 자체가 가지고 있는 숭고한 아름다움을 관객들도 느낄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주위의 시선에 신경이 많이 쓰였을 터다. ▲지인들의 우려가 가장 컸다. 부모님들의 걱정도 컸다. 그래도 어머니는 ‘배우인데 뭘 망설이느냐’ 하고 오히려 담담하게 대해주셨지만 아버지는 그렇지 않았다. 공연 전 프레스콜이 있던 날 마침 다리에 부상을 입어 공연장에 아버지가 데려다 주셨는데 때마침 걸려 있던 포스터를 아버지가 보시게 됐다. “조선 13도에 발가벗고 연기하는 사람은 내 딸밖에 없을 것”이라며 노여워하셨다. 어머니, 아버지는 아직 내 공연을 보지 않고 계신다. 그래도 부모님께 떳떳하지 못한 건 아니라는 생각이다. -‘벗는 것은 곧 외설’이란 공식으로 몰아가던 때가 있었다. 이 잣대로 들여다보는 시선들은 어떻게 극복했나. ▲마음상태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소명의식이나 목적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매일매일 노출 공연을 이어가기는 어렵다. 늘 새로운 자세로 마음을 다잡는 것으로 극복했다. 왜 부끄러움이 없었겠는가. 하지만 이보다 더 힘들게 하는 건 근거 없는 편견과 오해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봐라’는 것이 작품의 메시지가 아닌가. 편견과 오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는 작품을 본 다음에 다시 얘기를 해봤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노출에 대한 부담감은 어떻게 넘어섰나. ▲무조건 훈련을 통해서다. 3개월여 동안 훈련과정을 통해 작품에 몰입하다 보니, 그래서 그 세상의 사람이 되다보니 어느 날 자연스럽게 부담감이 극복되었다는 것이 느껴지더라. 감각을 잃지 않으려는 의도적인 노력도 해나갔다. 쉬는 동안에도 다른 배우가 하는 공연을 보고 내 안에서 그 인물이 빠져나가지 않게 지키려 했다. -‘논쟁’ 출연 이후 달라진 것이 있다면. ▲영화사에서 가끔 연락이 온다. “노출 신이 있는데 가능하겠느냐”는 질문이 대부분이다. 사람들이 많이 알아보기도 한다. 몇몇 남자들이 쪽지와 메일 등을 통해 지나친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 생각이 바뀐 것이 가장 크다. 초연 때는 나조차 나를 특별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번 2차 공연에 와서야 이런 생각에서 비로소 벗어날 수 있었다. -‘노출’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을 듯하다. ▲다른 배우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모든 예술작품에서 노출과 누드를 표현해온 그들의 고충을 알겠더라. 몸으로 이뤄낼 수 있는 ‘미학’도 알게 됐다. 다 벗어던지고 사는 것에 대한 본성을 터득하게 됐다. 실제로 연습 중에 옷을 입고 있으면 연기가 변하는 것을 체험한다. 옷을 입는 과정이 얼마나 인간의 순수함을 막고 사회화라는 병폐에 길들여가게 하는지, 정말 진한 경험을 한 셈이다. -‘굳이 벗었어야 했나’ 하는 문제는 아직까지 거론되는 모양이다. ▲사실 나조차도 워크숍을 거치면서 정말 벗게 될까 했다. 하지만 벗게 됐고 작품을 해석하는 가장 적절한 방법이었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가장 맑은 순간의 질감과 밀도를 드러내는 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다. 농도가 진해지는 연기가 가능한 것도 그 덕분이다. 순수할 수 있는 ‘날 것’의 결정체 덩어리를 만날 수 있었던 건 배우나 관객 모두에게 행운이다. -‘남자와 여자 중 먼저 변심하는 건 누구’라는 주제의식에 대한 결론이 모호한 감이 있다. 작품에 대해 배우들은 어떻게 해석했나. ▲텍스트가 이미 100여년 전 작품이다. 그때와 지금은 이미 남자와 여자를 보는 시선이 다르다. ‘변심’이란 사실상 주제가 아니다. 소재로만 사용됐다. 사회훈육에 대한 불가피성이 오히려 주요 테마다. 정작 육체에 걸친 옷보다는 마음을 가리고 있는 옷을 벗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부각시킨 것으로 이해했다.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가. ▲사람 사는 이야기는 언제나 보는 자체로 감동이지만 연기경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인 것 같다. 사람의 질감을 어떻게 표정과 소리만으로 흉내낼 수 있겠는가. 보는 이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관객들과 영혼으로 대면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하나 더 바람이 있다면 부모님이 어서 이번 공연을 보시고 관객과 배우로서 만나고 싶다는 것이다. euanoh@ieve.kr 초절정 엽기발랄 섹시 만화, 비타민 작가의 야릇한 만화, 최고의 개그만화… OSEN에서 무료로 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