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34. 요미우리 자이언츠)을 자주 볼 수 없는 것은 아무래도 서운한 일이다. 하라 다쓰노리(52) 요미우리 감독이 상대팀 선발로 왼손투수가 나오면 아예 이승엽을 선발 명단에서 빼버리거나, 우완투수일 경우 어쩌다가 선발로 올리더라도 감질나기는 마찬가지이다.
올 들어 하라 감독이 이승엽을 1루수로 줄곧 기용하는 일은 없었다. 5월13일 현재 이승엽은 30게임에 출장했다. 팀이 치른 38게임 가운데 8게임에서 벤치를 지켰다. 선발로 나선 것은 8게임이고 나머지는 대타나 대수비, 심지어 대주자로 나간 적도 있다. 굴욕적인 기용이지만 이승엽은 꾹 참고 때를 기다리고 있다. 1루수 경쟁자였던 다카하시 요시노부(35)나 가메이 요시유키(28)가 부진한 요즘에야 선발 기회가 가끔 돌아올 뿐이다. 그를 보고 싶어 하는 한국 팬으로서는 아쉽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이승엽은 홈런 5개를 날렸다. 이승엽의 성적은 50타수 11안타( .220), 10타점. 일본무대 개인통산 144홈런을 기록한 이승엽은 150홈런에 6개를 남겨두고 있다. 일본 통산 400타점고지도 눈앞에 있다(387타점으로 13개 남았음).

최근 잠실구장에서 만난 박영길 전 롯데 자이언츠 감독은 이승엽과 김태균(28. 지바롯데 마린스)을 놓고 이런 말을 했다.
“홈런 타자는 누구나 결점이 있기 마련이다. 그 결점을 고치려하기보다는 장점을 밀어주는 게 낫다. 김태균은 ‘내 식으로’ 밀고 가는데 반해 이승엽은 요미우리가 너무 손을 댄다. 배포의 차이도 있다.”
<스포츠 서울> 해설위원을 맡고 있는 그는 전성기를 전제로 둘의 능력을 단순히 수치로 환산하자면, (10점 만점에) 이승엽은 9.5, 김태균은 9점으로 미세한 차이를 두었다. 물론 김태균은 이제 전성기를 향해 치닫고 있는 선수이고, 이승엽은 엄밀하게 보자면 정점을 찍고 내리막길에 들어선 선수일 것이다.
성격이나 상황에 대처하는 개인의 성향은 당연히 다르다. 이승엽은 다소 내성적인 성격이어서 주위의 변화에 예민하다. 반면 김태균은 누가 뭐라고 하든지 간에 주위의 시선을 별로 의식하지 않는다. 이승엽과 김태균이 현재 처한 상황의 가장 큰 차이는 감독의 ‘신뢰의 기용’이냐 아니냐다.
니시무라 노리후미(50) 마린스 감독은 올 시즌이 시작된 이후 단 한 차례도 빼놓지 않고 김태균을 4번 타자로 기용하고 있다. 개막 이후 몇 게임에서 타격이 부진했던 김태균은 이젠 일본야구에 적응해 5월13일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와의 인터리그(교류전)에서 시즌 10호 홈런(리그 2위. 1위는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오티스 13개)을 날리며 마침내 퍼시픽리그 타점 1위(41개. 2위 소프트뱅크의 오티스 39개))에도 올랐다. 김태균의 타점은 팀이 치른 경기 수(41)와도 같다. 활황세다. 타율은 13일 현재 3할 2리(리그 10위).
박영길 해설위원은 “아무리 강타자라고 할지라도 들쑥날쑥 출장해서는 좋은 성적을 올리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차라리 이승엽이 다른 팀에 간다면 성공한다고 본다. 이를테면 요미우리의 라이벌 구단인 한신 타이거즈 같은데 가면 어떨까. 이승엽은 이제 명예롭게 은퇴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한다”고 조언했다.
이승엽이 현재로선 제 맘대로 움직일 수 있는 권한은 없다. 칼자루는 어디까지나 요미우리 구단이 쥐고 있다. 2004년 일본으로 건너가 마린스에서 혁혁한 성과를 거두고 2006년에 요미우리로 이적했던 이승엽은 올해가 4년 장기계약의 마지막 해이다. 일본 매스컴에서는 퍼시픽리그 구단 이적 설 등을 넌지시 흘리고 있다.

일본프로야구는 5월12일부터 인터리그를 시작했다. 이승엽으로선 좋은 기회를 잡았다. 홈게임 때야 1루 수비를 맡지 못하면 선발 출장이 어렵지만, 퍼시픽리그 팀과의 방문경기 때는 지명타자제가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운신의 폭이 넓어질 수 있다.
12일 세이부 라이온즈와의 교류전 첫 날에는 1루수, 6번 타자로 선발 기용됐다. 이승엽은 그날 요미우리의 유일한 타점을 기록했다. 13일에는 좌완 이시이 가즈히사가 세이부 선발로 등판하자 이승엽은 빠졌다가 우투수가 나온 다음에 두 타석에 들어서 2타수 무안타에 그쳤다.
12일 밤 <OSEN> 손찬익 기자와 통화했던 이승엽은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에 최선을 다하고 기회를 최대한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기회는 올 것이다. 기회가 올 때 절대 놓치지 않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이승엽은 “상대 선발 투수가 왼손일 경우 선발 출장 가능성이 낮다고 봐야 한다”면서도 “수비할 때 더욱 집중한다. 한 번의 실수라도 범하면 끝이라고 생각한다”고 비장한 각오를 밝혔다.
15, 16일 이승엽은 도쿄돔에서 김태균과 만난다. 6월 1, 2일에는 지바 마린스타디움에서 다시 맞붙는다. 이승엽은 “지금은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내가 아래라고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기 싫지만 현실이 그렇다”면서 “그러나 태균이와의 대결보다 내가 해야 할 것과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인터리그는 이승엽에게 좋은 기억도 있다. 지바롯데 시절인 2005년, 인터리그 도입 첫 해에 이승엽은 12홈런으로 공동홈런왕에 오른데 이어 2006년에도 16개의아치를 그려내 인터리그 홈런왕 2연패를 달성했다. 이승엽이 요미우리로 이적하게 된 계기도 바로 인터리그 맹활약이 한 가지 요인이었다.
이승엽이 2010년 인터리그를 거치면서 재도약의 반전을 이룰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홍윤표 OSEN 대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