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미, "난 영화 속에서 스멀스멀 자라난 배우" [인터뷰]
OSEN 최나영 기자
발행 2010.05.16 08: 24

배우 정유미는 자신을 '영화 속에서 스멀스멀 자라난 배우'라고 설명했다. 어느 정도 그녀의 인상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는 말이라 생각된다.
따뜻한 봄 햇살과 산산한 초여름 바람처럼, 혹은 은근히 아찔한 아카시아향처럼 자극적이지는 않지만 조용하고 은은히 자신의 달콤한 존재를 알리는 이들처럼, 정유미 역시 2004년 영화 '폴라로이드 작동법' 이후 조금씩 자신의 영역을 확장해나가고 있는 배우다.
지난 해에는 '까페 느와르', '첩첩산중', '오이시맨', '차우', '10억' 등 다수의 영화를 선보이며 여기저기에서 '정유미 발견'의 즐거움을 줬다.

생각해보면 이들 작품 외에도 '사랑니', '가족의 탄생', 드라마 '케세라세라' 등 많은 작품에서 다채로운 캐릭터를 연기해 온 그녀지만, 정유미라는 이미지로 관통하는 것이 있다. 순수한 영혼, 자연스러운 연기, 해맑은 말투, 그게 정유미의 존재감일 것이다. 개봉을 앞두고 있는 멜로영화 '내 깡패 같은 애인'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장르적 법칙을 충실히 따르고 있지만,  규격화돼 보이지 않는 것에는 주류 감성에 물들지 않은 정유미의 공이 크다.
그녀는 이번 영화를 찍으며 연기에 대한 깊은 고민과 혼란의 시기를 거쳤단다. 그래도 스크린 속 그녀는 여전히 자연스럽고 사랑스럽다.
아직 부산사투리가 남아 있는 귀여운 말투와 금방이라고 울어버릴 것 같은 크고 깊은 눈망울로 보는 이를 사로잡는 정유미는 양파 같이 한 꺼풀씩 까면 깔수록 더 많은 게 나올 것 같아 호기심을 자극하는 연기자이기도 하다.
 
- 이번 '깡패 같은 연인'은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장르적인 영화란 생각이 드는데.
▲ 주변의 권유로 하게 됐지만, 최종 선택은 제가 했어요. 영화를 보고 나서 '말 듣기를 잘했구나'란 생각을 했어요. 제가 사실 생긴 거와 다르게 말을 잘 안들어요(웃음).
- 선한 인상의 마스크가 인상 깊다
▲ 제가 마냥 순하고 선하지는 않아요. 어떤 분들은 제 얼굴 이미지만 보고 판단해서 상처를 받았던 적도 있어요. 나 자신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람들이 다 내 맘처럼 생각하는 게 아니니까 저를 다스리면서 일을 해야한다고 생각해요.
- 제작 관계자들이 대선배 박중훈과 연기하면서도 기 죽지 않고 당당하게 연기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고 하던데.
▲ 선배님과 캐릭터 대 캐릭터로 충실하면 되니까 연기적인 면이니까요. 선배가 받아주시고 나는 내 역할을 하려고 노력하니까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모습이 된 것 같아요.
- 촬영장에서는 어떤 스타일인가?
▲ 촬영할 때는 겁이 많아요. 하기 전에는 고민이 많죠. 하지만 슛이 들어가면 오히려 단순해지고 과감해요.
- 낯을 많이 가리고 숫기가 없나?
▲ 그래도 예전보다 많이 나아진 거에요. 예전에는 이렇게 앉아 얘기(인터뷰)도 못 했어요. 내가 왜 모르는 사람과 할 말도 없는데 얘기를 해야 하나란 생각도 했고, 내가 하는 말이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오해를 받아 왜곡되는 것이 무서워 차라리 입을 안 여는 게 낫다란 생각도 들었어요. 그래도 이번에는 박중훈 선배의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았어요.
(시사회에서 기자간담회 중 갑자기 눈물을 보여 화제가 됐다) 제가 울라고 운 건 아니에요. 대답을 할라고 했는데 갑자기 선배에게 감사하고 죄송한 마음이 북받치더라구요. 제가 너무 부족한데 영화 속 동철이처럼 선배가 도움을 너무나 많이 주셔서 고마웠어요. 제가 맡은 역할에 대해 말하려고 하는데 목이 막 메이더라구요.
- 영화인으로서 인상이 강하지만 드라마 '케세라세라' 때의 모습도 인상 깊다.
▲ 아무래도 영화를 많이 찍어 애착이 강하지만 드라마랑 영화를 구분짓지는 않아요. 초반에는 시스템이 다르다는 편견이 커 두려움도 있었는데, 연기는 다를 게 없더라고요. 나중에는 오히려 매일매일의 반응을 금세 볼 수 있다는 것이 재미있었어요. 너무 겁을 먹었었는데 스태프들과 배우들이 정말 좋은 기억을 안겨줬죠. 기회가 자연스럽게 되면 또 하고 싶어요.
- '카페느와르'와 '내 깡패같은 애인'에서 춤을 추는 장면이 나온다. 노래와 춤을 잘 하나?
▲ 다 어설픈 춤이요(웃음). 잘 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끼도 좀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노래는 초중학교 때 장롱 앞에서 친척들이 있는 가운데 막 부르고 그랬어요. 그 때는 제가 잘 하는 줄 알았죠. 하지만 어머니는 그런 어릴 적 제모습은 제가 지금 연예인이 된 것과  연결 짓더라고요(웃음).
 
- 본인의 배우로서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제가 한 번에 빵 터진 케이스는 아니지만 운이 좋은 편이었어요. 단편 영화들을 걸쳐 작품들을 통해 스멀스멀 자라난 느낌이라고 할까요. 열심히 작업한 과정들이 나름대로 많은 도움이 됐어요. 어떤 영화에서는 주인공도 됐고, 또 어떤 경우에는 잠깐의 조연도 됐었죠. 계속 잘 해 온 것 같아요. 그래도 이번 '내 깡패 같은 애인'은 정말 고민이 많았어요. 조화롭게 보여지는 것에 대한 걱정, 매끄러운 연기에 대한 부담감이 심했고 스스로 완벽하지 못하고 아직도 너무 부족 하다는 것을 깨달았죠.
- 완벽주의자인가?
▲ 어설픈 완벽주의자. 연기에 대해서는 '좀 나아지는 게 어딨어' 이렇게 생각해왔어요.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은 알지만, 정말 캐릭터를 잘 보이고 싶었죠.
- 어떤 역이든 자연스러운 연기가 특징이다.
▲ 그런 말을 많이 듣는데, 초반에는 나에 대한 그런 시선들이은근히 부담스럽기도 했어요. 과연 자연스러운 게 뭐지, 뭔가 척 하는 거 아닌가,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고요. 특히 이번 영화에서 고민을 많이 했는데, 개인적으로 그런 고민의 시간들이 정말 값진 시간이었어요. 돌이켜보니.
- 이제는 흥행에 대한 욕심이 날 법도 한데.
▲ 연기에 대해 다시 한 번 깨달은 것만으로도 정말 행복해요. 물론 영화는 우리끼리 보려고 만든 것이 아니기에 많은 분들이 봤으면 좋겠다고 기도만 하겠어요. '손익분기점을 넘자는 기도만 하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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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지형준 기자jpnews.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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