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즐기던 아들 때문에 ‘패온라인’ 개발
-4700년전 치우천왕 시대 담아 20일 공개
-현재 게임업체 고문 역…내 끼 이곳서 발산

[이브닝신문/OSEN=최승진 기자] “오랜만입니다” 기자가 야설록(50‧본명 최재봉) 와이디온라인 상임고문을 처음 만난 것은 2006년 7월이었다. 당시 그는 유명 작가가 아닌 온라인게임 개발자로 게임업계 안팎에서 관심을 끌었다. 4년여의 시간이 흐른 지난 4일 서초동 사무실에서 다시 만난 그는 크게 변한 것이 없었다. 이웃집 삼촌 같은 푸근한 외모에 자신의 일에 강한 자신감을 보이는 것도 여전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사무실 한쪽 벽면에 크게 붙어있던 게임지도의 내용이 꽉 차있었다는 점이다. 야설록 고문은 이 지도에 자신이 기획 중인 게임 속 세상을 틈틈이 그려왔다. “지도의 내용이 풍성해졌네요”라고 말하자 그가 빙그레 웃었다. 그러면서 호탕하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이제부터 시작이죠” 그가 수년간 공을 들인 게임은 20일 드디어 일반에 공개된다. 쉰을 넘긴 나이에 새로운 꿈을 향해 뛰고 있는 그의 계획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 필명이 야설록인데 무슨 뜻인가?
▲군복무 시절 눈 내리는 밤에 보초 근무를 서게 됐다. 그 때 전역하면 사용할 필명을 고민했는데 세상이 암록색으로 보이더라. 그래서 생각한 것이 밤 야(夜), 눈 설(雪), 푸를 록(綠)을 합쳐 야설록으로 정했다. 뜻을 밝히면 밤에 눈덮힌 암록색 풍경화다.
- 작가로 활동하게 된 계기는?
▲80년 학생운동으로 연세대에서 제적을 당한 뒤 군대를 다녀오고 나서 82년 5월부터 무협지를 쓰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당시 인기를 얻고 돈도 많이 벌면서 이 일을 직업으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영원히 글을 쓰겠다고 집에 말했더니 반대가 엄청 심했다.
- 작가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다면?
▲소설 ‘불꽃처럼 나비처럼’이다. 명성황후의 책을 읽고 작품 구상을 하던 때에 친구들과 우연한 기회에 명성황후 생가에 들렀다. 황후가 태어나신 방도 들여다보고 툇마루에 앉아 담배를 물고 있는데 뭔가 오싹하면서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분이 내게 ‘이왕 내 이야기를 쓸 거면 똑바로 써라’하고 경고성 메시지를 주신 게 아닌가 생각했다.
- 온라인게임을 개발하게 된 사연은?
▲온라인게임을 즐기면서 집안사람들과 단절한 아들 때문이다. 당시 아들은 중학생이었는데 매일 문을 잠그고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열쇠로 문을 따고 들어가 보니 컴퓨터 화면에 작은 게임 캐릭터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때 온라인게임과 첫 대면을 했고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가상공간에서 또 다른 사회를 형성하는 것에 가슴이 와닿아 나 역시 온라인게임에 빠졌다.
- 이전에는 게임을 즐긴 적이 없나?
▲청계천의 허름한 미싱골목에서 무협소설을 쓰던 때부터 게임을 즐겼다. 당시 갤러그, 제비우스, 스페이스 인베이더 등 오락실용 아케이드 게임을 주로 즐겼는데 동전 하나로 마지막 판까지 하곤 했다. 90년대 PC통신 시절에는 머드 게임(글자 기반 게임)인 쥬라기공원을 자주 즐겼다.
- 개발 중인 ‘패온라인’은 어떤 게임인가?
▲4700년 전 치우천왕 때의 고대 동북아시아를 무대로 신화와 영웅담, 설화 등을 온라인게임의 MMORPG(온라인모험성장게임) 방식으로 다뤘다. 동양계 문명의 기원을 찾는 과정을 담아내 서양의 신화, 문화 등을 바탕으로 한 지금까지의 온라인게임과 차별화했다. 일부에서는 자꾸 무협게임과 연결시키지만 이는 틀린 말이다. 4700년 전에는 소림사도 없었다. 동양 판타지게임이 옳은 표현이다.
- 게임을 개발하면서 겪은 애로사항도 있을 듯 한데.
▲기존 MMORPG는 서양 판타지 등 익히 잘 알려진 소재를 다룬 만큼 참고할 만한 것이 많았지만 우리는 4700년 전 동북아시아 지역을 배경으로 해 참고할 자료가 없어 애를 먹었다. 예를 들어 오크란 서양 판타지 게임에서 악역의 상징으로 잘 알려졌지만 우리 게임에 등장하는 몬스터는 기존과 다른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만 했다. 여기까지 따라와 준 팀원들에게 이 자리를 통해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 작가 활동은 그만 둔 것인가?
▲앞으로 모든 작품 활동을 게임을 통해 하고 싶다. 책으로 제작하는 것도 좋지만 게임을 만들다 보니 이것만큼 재미있는 일이 없다. 책은 게임의 부가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만들 수도 있다. 온라인게임 중 MMORPG 장르를 접하고 타 장르의 게임을 해보지 않았다. 특히 이 게임 장르는 사람들을 빠져들게 하는 힘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 입장에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강력한 도구라고 생각한다.
-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게임은 글로 표현하지 못했던 것을 표현할 수 있게 해주는 무한한 공간이다. 게임을 개발하는 작업은 흡사 신의 천지창조를 흉내 내는 것과 같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도 개발자의 의지에 맞춰 심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작업과정은 만만치 않지만 결과에 큰 기대를 가지고 일할 수 있다.
- 50대에 게임을 즐기는 의미는?
▲다른 세대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재미있기 때문에 즐길 뿐이다. 앞으로 50대 게임 이용자들도 늘어날 것으로 본다. 게임을 한번 즐긴 사람은 취미생활로 또 다시 게임을 선택한다. 10년 전 함께 온라인게임을 즐겼던 20대 게임 이용자들이 30대가 되서도 게임을 즐기는 것을 보고 있다. 당시 게임을 즐기던 30대 이용자들은 40대가 됐다. 길드(게임을 함께 즐기는 모임)에 나가면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이 2명 있다.(웃음)
- 평소 생각해왔던 게임의 정의는?
▲게임은 재미다. 다양한 직업군이 한 곳에 모여 재미를 나누는 것은 게임 밖에 없다. 특히 온라인게임이 활성화되는 것은 너와 나라는 존재가 함께 모여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바깥세상에서 힘든 일을 겪은 사람들이 게임에 들어와 즐겁고 유쾌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야설록 프로필
1982 작가 활동 시작
1994 도서출판 뫼 설립
1996 (주)야컴 설립
2003 (주)거울속의 매미 설립 (현)야설록 프로덕션
2006 명지대학교 교수
2010 현 와이디온라인 상임고문
shaii@iev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