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팀 내 선발투수 중 가장 먼저 8이닝 소화에 성공했다. 두산 베어스의 이적생 좌완 이현승(27)이 8이닝 동안 111개의 공을 던지며 2실점 호투를 펼쳤다.
이현승은 21일 잠실 LG전에 등판해 1회 공이 몰리는 현상으로 2실점을 한 이후 빼어난 피칭을 선보이며 8이닝 5피안타(탈삼진 5개, 사사구 1개) 2실점으로 경기를 마쳤다. 뛰어난 활약을 펼쳤으나 팀 타선이 5회 무사 만루 절호의 찬스를 놓치는 등 무득점에 그치며 시즌 4패(2승)째를 기록하고 말았다.
직구 비율은 높지 않았으나 슬라이더-커터-싱커는 비슷한 빠르기를 바탕으로 홈플레이트 앞에서 움직임을 달리했다. 1회 가운데로 몰리는 공이 많아 난타당한 이현승이었으나 '팔색조' 투구를 통해 8회초 공수교대까지 자리를 지켰다. 지난 한화와의 2경기서 계투 소모도가 컸던 것을 감안하면 이현승의 투구는 빼어났다.

특히 2007시즌 이후 다니엘 리오스(전 야쿠르트)의 일본 이적으로 이닝 이터가 사라졌던 두산 마운드를 생각하면 이현승의 8이닝 투구는 2008시즌 후 두 번째 재계약에 성공한 '김경문 3기' 두산 선발진에 또 하나의 시금석과도 같았다. 2008시즌 개막과 함께 두산은 선발이 아닌 계투에 중점을 둔 경기를 펼쳤기 때문.
3점 차 이내 리드 시 마무리 투수에게 선발이 곧바로 바통을 넘길 수 있는 요건. 6이닝 3실점이 퀄리티스타트의 기준이 되고 7이닝 3실점이 퀄리티스타트 플러스의 기준이 된다면 8이닝을 3점 이하로 막았다는 점은 '단기전급 에이스'의 기준으로도 볼 수 있다. 다음 일정을 위해 계투진의 체력 소모를 줄이는 동시에 앞으로의 활약상을 기대할 수 있게 하기 때문.
1회 2실점 이후 실점 허용 없이 8회까지 마운드를 지킨 이현승의 투구는 단기전 제패의 꿈을 키우는 두산에 더없이 빛나는 투구였다. 2008년 페넌트레이스 동안 8이닝 투구에 성공한 선발은 9월 17일 잠실 SK전서 8이닝 5피안타 1실점으로 승리를 따낸 맷 랜들 단 한명이다. 지난 시즌에는 김상현(4월 16일 잠실 히어로즈전 9이닝 5피안타 1실점)과 김선우(4월 14일 잠실 히어로즈전 8이닝 9피안타 2실점)만이 8회 종료까지 마운드를 지킨 선발이다.
지난해까지 2년 간 완투는 1번, 1경기 8이닝 투구에 성공한 투수가 단 세 명에 불과하다는 점은 페넌트레이스 및 최종 단기전에서 선발로 재미를 보지 못한 두산의 반성점이기도 하다. 실제 선발로 확실히 특화되지 않았던 이혜천(야쿠르트)은 2008년 10월 29일 SK와의 한국시리즈 3차전서 선발 등판, 5회 2사까지 4피안타 1실점으로 쾌투를 펼쳤으나 곧바로 바통을 교대한 이재우가 최정에게 역전 결승 투런을 허용해 패전투수가 되었다.
선수 본인은 뛰어난 구위를 보여주며 일본행에 성공했으나 팀은 1승 4패 준우승으로 가는 시리즈 분기점이 된 순간. 그와 함께 리오스의 이적 이후 선발난에 골머리를 앓던 두산의 약점을 복선으로 암시한 순간이기도 하다.
그동안 두산은 선발투수들이 기대만큼의 실적을 올리지 못해 선발 로테이션을 주로 4인 체제로 운용하며 '이닝 이터'를 믿기보다 승리계투를 일찍 투입해 경기를 승리로 이끄는 데 주력했다. 지난해 두산 경기 기록지에서 승리계투진을 가리킨 'KILL 라인'을 이룬 4명(고창성-임태훈-이재우-이용찬)이 선발투수의 조기 강판으로 인해 1경기 당 동시에 표기되는 일도 적지 않았음은 이를 확실히 증명한다.
비록 패전의 멍에를 썼으나 8이닝 동안 111개의 공을 던지며 2점 만을 허용한 이현승. 두산은 금민철에 10억원을 넥센에 주고 데려온 이현승의 올 시즌 평균 자책점이 5.10(22일 현재)에 그친다는 점에 주목해서는 안 된다.
목표 현실화를 꿈꾸는 두산이라면 자신들이 아끼던 금민철에 현금까지 내준 이현승이 21일 경기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경기 당 최대한 효과적으로 많은 이닝을 소화할 수 있도록 힘을 북돋워야 하는 쪽이 오히려 옳을 것이다. 이는 개막 2선발로 스타트를 끊었던 이현승만이 아니라 다른 주축 선발투수들에게도 내려진 '무언의 특명'이다. 2001년 두산을 제외한 시리즈 패권을 거머쥔 팀들의 대다수가 일단 튼튼한 선발진을 기반했음은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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