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감독, "박수 몇 분 쳤느냐가 중요하지 않아" [칸 인터뷰]
OSEN 조경이 기자
발행 2010.05.22 07: 33

영화 ‘시’가 현지 언론에 공개된 이후에 세계 외신들은 이창동 감독의 연출력과 배우 윤정희의 연기력에 호평을 보내고 있다. 여세를 몰아 제63회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의 강력한 후보로 지목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칸에서 만난 이창동 감독은 그 어느 때보다 담담하고 차분한 표정으로 한국에서 취재진 앞에 섰다.  
- 영화 ‘밀양’ 이후 경쟁부문으로 두 번째 칸에 왔다.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는지.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다. 사실 공식 상영 때의 반응이 평가의 바로미터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박수 몇 분 쳤느냐’라는 것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은 좀 그런 것 같다. 

- 수상에 대한 솔직한 마음은.
▲남들과 경쟁 하는 것 때문에 영화제를 즐기지 못해서 사실 베니스 영화제에 갔을 때도 그렇고 경쟁하는 것을 싫어했다. 경쟁하려고 영화를 만드는 것도 아니다. 경쟁이 된다고 썩 좋지도 않다. 하지만 또 상을 못 받으면 기분이 나빠지니까 그게 문제다. 영화가 아시다시피 올림픽에서 승부를 겨루는 것도 아니고 기록을 내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결과는 늘 그런 식으로 나타나니 그게 싫었다. 난 학교 다닐 때부터 시험 치는 것을 싫어했다. 아예 안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을 한다.
- 하지만 영화제에 출품을 했으니 경쟁부문에 뽑힌 것이 아닌가.
▲영화 출품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이 영화를 만드는데 돈을 댄 사람들이 출품하자고 하면 해야 한다. 이번 경우는 사실 내가 뭐라고 말할 처지가 못 되는 게 제목도 ‘시’ 인데다가 영화도 썩 재미있는 것 같지 않고 ‘그나마 칸마저 없으면 뭐로 홍보할래?’라고 해서 처음부터 이렇게 엮이게 됐다. 우리식으로 이야기하면 외통수에 걸려 빠져나갈 수 없게 됐다.
- 윤정희와의 작업은 어떠했는지.
▲충분히 윤정희 선생님을 괴롭혔다. 테이크도 갈만큼 갔고 회 차도 적지 않고 윤 선생님이 90% 이상 끌고 가는 영화라서 굉장히 강행군을 했다. 그런데도 선생님은 즐겁게 하셨다고 한다. 연출이라는 것은 어쨌든 마지막까지 최대치를 뽑아내는 것인데 그게 달라지지 않는다. 제가 약간 윤 선생님이랑 작업하면서 달라진 것은 ‘오케이’를 말해주는 정도이지. 여전히 까다롭다. 제 속의 기질이 달라지지 않았다.
- 김희라를 캐스팅하게 된 배경은.
▲처음에 선생님의 몸이 불편한 것은 캐스팅에 있어서 부정적인 고려였다. 힘든 역할이라서 욕조 속에 안아서 벗고 연기를 해야 하고 물을 틀어 놓고 연기하는 것이 체온에도 건강에 안 좋아서 그걸 심각하게 고려했다. 나머지 부분에서는 김희라 씨만한 인물이 없다고 봤다. 영화에서 박노인은 무력해진 마초이다. 배우로서 그런 이미지, 그런 역할의 경험에 있어 김희라 선생님만한 분이 없다. 그리고 케이블 TV에서 김희라 선생님 근황 소개하는 것을 봤는데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건강상태가 좋아서 캐스팅 의사를 물어봤는데 좋다고 하셨다. 원래 적극적이시고 건강에 자신이 많으시다. 김희라 선생님은 연기는 굉장히 감이 빠르다. 힘든 상태에서 연기를 잘 해내셨다.
- 시를 소재로 영화를 만든 이유는.
▲시를 선택한 것은 내가 문학을 했던 사람으로서의 부채감 때문에 그런 것은 전혀 아니다.  오기가 생긴 것은 남들이 시를 두고 어렵다고 해서였다. 남들이 변태라고 말하는 종류인지도 모르지만 ‘그게 어려울 것이다’라고 해서 오히려 의욕이 생겼다. ‘어려울 것이다’라는 말은 ‘관객과 소통이 어려울거다’인데 ‘그럼 한번 해볼 만하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전히 어렵구나’라는 것을 현실적으로 확인하게 됐다.
- 한국에서 흥행 성적이 좋지 않다.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힘든 영화를 왜 만드냐고 하지만 그래도 저는 ‘소통하리라’는 믿음을 갖고 만든다. 하지만 만약에 그런 작업이 누군가에게 경제적인 부담을 준다면 이건 저한테는 상당한 충격이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 충격에 적응이 되겠지만 개인적으로 영화 만들 때 투자자에게 손해를 주면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자격이 감독들에게 자동적으로 주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부분에서 회의에 빠져있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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