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검승부'.
2010 남아공 월드컵을 앞두고 일본에서 열리는 한일전(24일 오후 7시 20분 일본 사이타마 스타디움 2002)을 앞둔 오카다 다케시 일본 대표팀의 심정이다. 허정무 한국 대표팀 감독도 한일전에 필승을 다짐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런 분위기가 연출된 까닭은 여러 가지 상황이 맞물렸기 때문이다. 일단 한일 양국이 총력전을 펼치는 경기가 12년 만의 일이다. 진정한 한일전은 1998년 4월 1일 잠실에서 치른 평가전이 마지막이었다. 공교롭게도 당시 일본의 지휘봉을 잡은 인물은 오카다 감독이었다.

▲ 12년 만의 진검승부
그동안 양국은 총력전을 회피했다. 대표팀의 주축을 이루는 선수들이 해외로 진출하면서 A매치 데이가 아니면 경기를 치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나카타 히데토시가 이탈리아로 진출했고 한국은 2002 월드컵 우승의 핵심인 박지성이 네덜란드를 거쳐 영국으로 떠났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정식 A매치로 인정하지 않았던 2007 아시안컵 3, 4위전이 싱겁게 끝난 것도 같은 이유다.
또한 한일전에서 패배할 경우 그 부담이 큰 것도 문제였다. 한일전은 보장된 흥행 카드이지만 감독에게는 약속된 '단두대'이기도 했다. 지난 1997년 9월 28일 일본의 심장인 도쿄에서 열렸던 '도쿄 대첩(2-1 승)'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일본 대표팀을 이끌었던 가모 슈 감독은 이민성에게 결승골을 내준 뒤 대표팀에서도 물러나야 했다.
그 바통을 이어받았던 인물이 수석코치였던 오카다 감독이다. 당연히 오카다 감독은 한일전의 무서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오카다 감독이 "한일전에 자존심을 걸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 한일전이 다급한 한국과 일본
그렇다면 한일전이 이런 상황에서 개최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양국의 사정이 한일전이 필요할 정도로 다급해졌기 때문이다. 지난 2006 독일 월드컵과 비교해 가라앉은 열기를 띄울 수 있는 수단이 필요했다. 그런 면에서 한일 정기전의 부활은 안성맞춤이었다.
더군다나 일본에게 2010 남아공 월드컵 출정식이 한일전이라는 사실도 특별했다. 지난 2월 동아시아선수권의 부진과 4월 세르비아전(0-3 패)의 참패로 위기에 몰린 오카다 감독이 국민적 신뢰를 이끌어내기에 한일전 이상이 없었다. '허풍선이'로 불리는 오카다 감독의 '4강 발언'이 거짓이 아닌 현실이 되기 위해서라도 한일전은 필요했다. 오카다 감독은 1998년 3월 1일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한일전에서 2-1로 승리하면서 국민의 영웅으로 떠오른 경험도 있었다.
물론 허정무 감독도 한일전을 원했는지는 의문이다. 일본이 한국을 '가상의 카메룬'으로 상정한 것과 달리 일본 언론의 지적대로 우리에게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격렬한 한일전은 부상이 우려되는 경기이기도 하다. 우리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을 앞두고 비슷한 목적으로 열렸던 한중전에서 황선홍을 잃은 경험도 있다.
그러나 한일전이 확정된 이상 허정무 감독도 패배는 금물이다. 동아시아선수권에서 '공한증'이 무너지는 중국전 패배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가 한일전 승리였다. 반대로 말한다면 한일전 패배는 최근 호조의 상승세를 무너뜨릴 수 있다. 허정무 감독은 "경기에서 최선을 다하기를 바란다"는 말로 자신의 심정을 밝혔다.
▲ 전력은 한국, 각오는 일본
그런 면에서 허정무 감독은 상당히 유리한 입장이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한국이 역대 최고의 전력을 자랑하고 있는 반면 일본은 역대 최악으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가지고 있는 해외파 12명의 이름값은 상대를 압박하기에 충분하다. 나머지 국내파의 기량 또한 만만치 않은 것은 마찬가지다. 국내파 위주로 구성된 동아시아선수권에서도 한일전을 승리했던 한국이 승리를 자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극일'을 각오하고 현해탄을 건넜던 과거와는 다른 분위기다.
하지만 각오에서는 일본이 앞선다는 평가다. 객관적인 전력에서는 뒤지지만 안방, 그것도 월드컵 출정식에서는 질 수 없다는 의지가 일본에 있다. 오카다 감독도 한일전 승리를 위해 평소와 다른 수비 축구를 준비했다. 이른바 '8백'이다. 월드컵에서 만났다는 생각으로 한일전을 치르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일본 교도통신의 무라야마 준 기자는 "솔직히 한국의 전력이 부럽다. 한일전에서 이런 전력 차이가 날 줄은 몰랐다. 일본은 동아시아선수권과 전력에 큰 차이가 없지만 한국은 해외파의 합류로 전혀 다른 팀이 됐다"면서도 "일본도 쉽게 질 수는 없다. 최근 하락세에서 벗어나려면 한일전 승리가 필요하다. 좋은 승부가 될 것이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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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양국의 핵심 미드필더인 박지성-나카무라 슌스케 / 사이타마=손용호 기자 spjj@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