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살 건물엔 사람냄새가"
OSEN 강희수 기자
발행 2010.05.26 16: 17

군산 조선은행∼나주 일본가옥까지
박제된 풍경아닌 생활 속 근대기행
<청춘남녀, 백년 전 세상을 탐하다> 최예선|420쪽|모요사

 
[이브닝신문/OSEN=오현주 기자] 바다에 등대를 설치하자는 논의가 처음 시작된 것은 청일전쟁 직후다. 경기만 풍도 부근에서 청국과 전쟁을 벌이던 일본군은 한반도 연안에 등대가 없어 통항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전쟁에 승리하자마자 연안을 샅샅이 측량해 등대를 설치할 위치를 조사한다. 그리고 1901년 등대 건설을 결정한다. 1903년 인천 팔미도 등대를 시작으로 1910년 이전에 완성된 등대는 모두 37기였다.
세계가 요동치던 20세기 초 대양을 건너 타지에서 온 낯선 이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이 땅에 집을 짓고 건물을 만들어 세운다. 온전히 이국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한국적이지만도 않은 독특한 양식의 근대건축물은 그때 태어났다.
건축잡지 에디터 출신의 아내, 건축디자인 일을 하는 남편이 백년 전 이야기를 찾아 이미 잊혀진 시간 속으로 여행을 떠났다. 부부는 한국 최초의 근대식 선탄시설을 갖춘 철암탄광에서부터 일제의 침략전쟁을 증언하는 제주도 알뜨르 비행장까지 100여곳을 직접 답사하고 그 중 70여 곳을 간추렸다. 아내는 건물에 숨겨진 이야기를 글로 풀어냈고, 남편은 건물 도면을 구해 3차원(3D) 그래픽으로 재현했다.
그 속에는 서양식 스위트홈의 전형을 보여주는 홍난파 가옥, 러시아 왕궁건축가 사바틴이 설계한 제물포구락부, 일제 수탈의 역사를 그대로 증언하는 거대한 규모의 시마타니 금고와 은행들, 국내 최초로 이전 복원한 문화재로 기록된 벨기에 영사관 등 시간이 멈춘 듯한 전국 곳곳의 문화현장이 있다.
1909년 사람들은 최초로 유리로 지어진 집을 구경했다.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면서 햇살이 비추면 놀랄 정도로 반짝거렸다. ‘수정궁’이란 이름은 그래서 붙었다. 궁궐 안에 지어진 서양식 온실 ‘창경궁 대온실’ 이야기다. 1908년 이토 히로부미가 설계를 지시했다.
대구 동산의료원의 선교사주택과 대전 대덕구 오정동에 위치한 선교사촌은 도시 한 가운데 자리잡은 외인촌이었다. 1910년경 서양식 벽돌주택에 한식 지붕을 얹어 절충식으로 지어진 건물 안에는 피아노와 그림액자 등이 아직도 남아 있어 당시 선교사들의 생활 자취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뾰족한 모습이 눈길을 끄는 대전 대흥동 뾰족집도 있다. 1920년대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뾰족집은 당시 철도국장의 관사로 사용됐다. 서양 중세의 성처럼 지붕이 뾰족한 외관을 가졌을 뿐 아니라 거실의 지붕도 원뿔형이다. 
건축물에 대한 이야기지만 건물보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먼저다. 근대사의 기록들이 새롭게 만들어졌다. “시간이 멈춘 박제된 풍경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새로운 역사, 바로 그것이 건축물이었다”고 토로한다. 지난해 1월1일 조선은행 군산지점에서 시작한 여정을 12월25일 나주 영산포 일본인 가옥거리에서 마감했다. 그 여정 끝에 “건축물은 가치 있는 것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았기에 가치가 있는 것”이란 답을 얻어냈다. 
euanoh@iev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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