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월화극 '동이'에는 기존 사극에서 볼 수 없었던 입체적인 인물들이 등장한다.

통상적으로 사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선과 악으로 확실한 구분을 지어 갈등을 야기하고 선이 결국에는 이기는 '권선징악'의 패턴을 고수해왔다.
현대극에 비해 실제 인물을 조명하는 사극은 그만큼 상상력이 끼어들 여지가 적었고, 그 핑계로 작가들은 상상력을 아껴(?)왔다.
그래서 때때로 어린이 동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처럼 악인은 악하기만 하고, 주인공은 어떤 상황에서도 선하기만 한, 인간미가 상실된 캐릭터들이 그려졌다.
하지만 '동이'는 다르다. 악의 축으로 여겨졌던 장희빈은 초반 현대 여성 못지않은 영리함과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여성으로 그려졌고, 악인이 되는 과정도 정치적 상황 설명과 함께 꽤나 설득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가장 놀라운 변신은 숙종. 유약하고 여자들의 암투에 휘둘리기만 하는 왕의 모습이었던 숙종은 이병훈 감독을 만나 가장 입체적인 캐릭터로 변했다.
근엄하게 인형처럼 앉아 있던 왕이 숨을 쉬는 진짜 '인간'의 모습이 된 것. 그는 절대적인 군주의 모습은 물론, 우리처럼 농담도 하고, 장난도 치고,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한껏 미소도 짓는 '인간'적인 모습을 선보였다.
'깨방정'이라는 소리를 들을지언정 술자리에서 자기 자랑도 일삼고, 동이를 보러간 자리에서는 좋아하는 사람과 조금이라도 같이 있고 싶어하는 연모자의 모습을 여실히 드러내기도 했다.
26일 방송에는 숙종의 또 다른 '인간미'가 드러났다. 인현왕후를 폐위시키는 과정에서 기존 사극에서 그려졌던 숙종과는 차별화된 모습을 선보인 것. 장희빈의 치마 폭에 싸여 오직 분노로 인현왕후를 폐위시키던 숙종은 오간데 없이 '동이'의 숙종은 한 남편으로서 조강지처를 내쳐야하는 한 남자의 고뇌를 섬세하게 드러냈다.
어머니의 죽음과 그 죽음의 주모자로 내몰린 부인을 내쫓아야하는 비극적인 상황.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결국 결정을 내린 숙종은 인현왕후를 불러 어렵게 자신의 입장과 자신이 해야만되는 일을 이해시킨다.
그 모습을 통해 또 한번 '인간' 숙종의 모습이 여실히 그려졌고, 시청자들은 공감을 얻었다.
한 인간이 처음부터 끝까지 선하기만 하거나, 악하기만 할 수 없다. 상황에 따라 악인이 되거나 선인이 되기도 하고, 진지해지거나 우스꽝스러워지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동이'의 숙종이야말로 리얼리티를 입은 캐릭터이며, 그리고 그런 캐릭터가 살 수 있는 건 지진희라는 배우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3분의 1 지점까지 온 '동이'가 앞으로 다른 캐릭터에도 이런 리얼리티를 입혀 좀 더 풍성한 사극이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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