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 이윤석이 리얼 버라이어티의 중심에 섰다. 진짜 리얼이란 무엇인지, 진짜 웃음은 무엇인지, 또 그 속에 감동까지 공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바로 KBS 2TV 주말 버라이어티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에서다.
이윤석은 그간 독한 개그나 대박 입담을 구사하는 개그맨은 아니었다. 소위 '병풍'이라 불릴 정도로 오히려 조용하고 존재감이 약했다. 빵 터지는 한 방은 많지 않았지만 꾸준히 활동하며 이 프로, 저 프로를 넘나들었다. 개그도 하고 리포터도 하고 MC도 하고, 리얼 버라이어티의 고정 멤버가 되기도 했다. 활동 폭이 다양했지만 지난 1997년 MBC 코미디 프로그램 '오늘은 좋은 날'에서 개그맨 김진수와 콤비를 이뤄 선보였던 '허리케인 블루' 말고는 대표작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알고 보면 케이블 TV는 제외하고서라도, '일밤', '섹션 TV 연예통신', '느낌표', '라인업'에 이어 '해피선데이', '쾌적한국 미수다'까지 여러 프로그램을 섭렵했지만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약했다. 보조 MC의 느낌이거나 독하고 강한 선배 개그맨들 사이에 기가 눌려 있거나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쉽게 말해 이윤석은 '양초' 같은 존재로써 자신이 주목받기 보다는 남을 빛나게 하는 데 헌신하는 쪽이었던 셈이다.


그랬던 그가 최근에는 리얼 버라이어티 '남자의 자격'의 중심으로 쑥 파고 들어왔다. 뒤에서 코너의 분위기를 조율하고, 선배 이경규와 예능 초보 김태원, 이정진 사이의 갭을 조절하며 묵묵히 평소처럼 살던 이윤석은 특유의 성실함과 완벽주의(?) 덕분에 갑자기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됐다. 최근 방송한 강연회 미션과 자격증, 밴드 도전 미션 때문이다. 이제 누가 그를 보고 병풍이라 할 수 있을까.
이윤석은 '이박사', '이교수'라는 별명처럼 실제로 박사 개그맨이면서 현재 대학 출강 중이다. 강의도 중요하지만 본업은 방송 활동이다. 일주일에 이틀은 대학 강의에 할애하고 나머지 이틀은 도배 학원, 또 이틀은 드럼 연습에 매진했다고 했다. 그 와중에 틈틈이 녹화도 해야 한다. 그의 너스레처럼 '데뷔 이래 제일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이윤석의 열정과 성실함은 결국 시청자들에게 통했다. '남자, 청춘에게 고함'이라는 미션으로 진행된 강연회에서 이윤석은 웃음보다는 진지함과 쓴 소리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건드렸다. 이후 방송된 자격증 편에서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기량을 닦아 도전한 도배시험에서 예기치 못한 손가락 부상으로 시험을 포기해야 하는 리얼의 상황을 보여줬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실수를 자책하고 혹여 다른 동료들이나 밴드 프로젝트에 누가 될까 걱정하며 흘리는 그의 눈물은 시청자들의 가슴을 움직이게 했다.
이어 지난 주 방송된 밴드 도전기에서는 도배시험 때문에 다친 손으로 드럼 연주를 해내는 모습이 코끝을 찡하게 만들었다. 아픈 손가락 때문에 쩔쩔매는 모습이 웃음을 자아내다가도 드럼 스틱을 놓칠라 손에 테이프를 둘둘 감는 모습은 '인간 이윤석'을 향해 박수를 보내게 했다.
병풍은 안녕이다. 언젠가 인터뷰에서 스스로 당장 웃겨야 하는 코미디쇼나 MC보다는 서서히 꺼내 보일 수 있는 리얼 버라이어티가 편하다고 했던 그였다. '남자의 자격' 방송 1년이 넘어가면서 뚝배기처럼 끓어 오른 그의 매력은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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