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임익준, "내가 잘 해야 기회를 얻을 수 있다"
OSEN 손찬익 기자
발행 2010.05.28 07: 30

"조금씩 기회가 늘어나는 만큼 잘 해야 한다는 각오가 더욱 강해진다".
데뷔 3년 만에 1군 무대에 오른 삼성 내야수 임익준(22)이 성공을 향한 투지를 불태웠다. 2006년 제22회 세계 청소년 대회의 우승을 이끈 임익준은 2007년 2차 3순위로 사자 유니폼을 입었다. 부푼 가슴을 안고 프로 무대에 입성했으나 그가 설 자리는 좁았다. 임익준은 입단 직후 당시 한대화 수석 코치와 류중일 수비 코치로부터 상무 입대를 권유받았다. 임익준은 26일 대구 SK전에 앞서 "그땐 야구하는 군대가 있다는 것도 몰랐다"고 웃었다.
그는 '일찌감치 군대를 다녀오는게 훨씬 낫다'는 선배들의 조언 속에 2007년 3월 상무에 입대했다. 2년간 기량 연마에 주력했던 임익준은 지난해 3월 팀에 복귀했으나 줄곧 2군 무대에 머물렀다. 올 시즌 전훈 명단에서 제외된 뒤 자신감을 잃어버릴 뻔 했다. 그러나 이대로 물러날 수 없었다. 그는 "전훈 캠프에 참가하지 못해 동료 선수들보다 뒤지지 않도록 속된 말로 죽도록 훈련했다"고 털어 놓았다.

'진정한 노력은 결코 배반하지 않는다'는 이승엽(요미우리)의 좌우명처럼 겨우내 누구보다 굵은 땀방울을 쏟아냈던 임익준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경기 후반 대수비 또는 대주자 요원으로 투입됐지만 혼신의 힘을 다해 뛰었다. '임익준'이라는 이름 석 자를 알리기 위해. 임익준은 지난달 25일 대구 두산전 8회 대주자로 나섰다. 자신의 데뷔 첫 1군 경기 출장.
"두산전에 대주자로 나선게 아직 기억난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냥 교체에 불과하지만 내겐 큰 의미를 안겨줬다. 기분도 좋았다". 경기 출장 횟수가 늘어날수록 욕심과 목표 또한 커졌다. "처음 1군에 올라 왔을때 빨리 적응해야 하니까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한 두 번 하다보니 자신감이 생긴다. 계속 1군에 남고 싶다".  
그는 선수단에서 '복덩이'로 통한다. 그가 1군 엔트리에 등록될때면 팀이 연패의 늪에서 벗어나거나 연승 행진을 이어간다. 모 선수에 따르면 "익준이가 1군에 있을때 승률이 아주 좋다"고 귀띔했다. 1군 선수들은 팀이 어려울때마다 임익준에게 전화걸어 "너 빨리 와서 분위기 좀 살려봐라"는 말을 건네기도 한다.
김광현(SK), 임태훈, 이용찬(이상 두산), 양현종(KIA) 등 4년 전 청소년 대표팀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친구들의 선전은 신선한 자극제. 임익준은 "군대에서 전역한 뒤 내심 친구들이 부러웠다. '나도 시켜주면 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며 "그러나 경기 중 벤치에 앉아 친구들의 모습을 보니 '정말 잘 하네'라고 인정하게 됐다. 솔직히 배아팠다"고 껄껄 웃었다.
임익준은 매년 겨울이면 청소년 대표팀 시절 인연을 맺은 친구들과 만난다. '올 시즌에는 보다 당당하게 볼 수 있지 않겠냐'는 기자의 물음에 "친구들이 워낙 잘 하니까 아직 무리"라고 고개를 가로 저었다. 하지만 언젠가는 친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는 마음가짐은 잃지 않았다.
원정 경기마다 같은 방을 사용하는 최형우의 조언도 큰 힘이 된다. 임익준은 "형우형이 프리배팅 훈련 때 '너는 힘이 좋으니까 그냥 똑딱 갖다 맞추지 말고 자신있게 휘두르라'고 격려해주시지만 아직까지 내가 그에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일찌감치 국방의 의무를 수행한 덕분일까. 그는 동료 선수들보다 마음이 한결 가볍다. 임익준 역시 "이제 야구에만 집중하면 된다"고 말했다. 구단에서 거는 기대도 남다르다. 임익준은 기회를 놓치지 않을 태세. "구단의 기대 만큼 해야 한다. 기회를 줬으면 좋겠다는 바람보다 내가 잘 해야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열심히 노력하면 되지 않겠냐".
동성고 시절 3루수로 활약했던 임익준은 내야 전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게끔 류 코치의 집중 조련을 받고 있다. 힘겨운 훈련 속에서도 할 수 있다는 믿음은 변함없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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