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껏 치렀던 숱한 결승전도 이번 결승전만큼 절박하지는 않았다. '폭군' 이제동(20, 화승)의 얼굴에는 결연함이 서려있었다. '쫓기는 자에서 쫓는 자'의 입장이 됐다고 말은 했지만 이제동 자신은 분명 '쫓기는 자'라는 인상을 강하게 풍겼다.
지난 28일 서울 방배동 서래마을 화승 연습실에서 만난 이제동은 그야말로 정신없이 바빴다. 하지만 강자의 여유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을 한껏 낮추면서도 비굴하거나 기세적으로 밀린다는 인상보다는 '진정한 강자'라는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29일 오후 5시 서울 고려대학교 화정체육관 특설무대에서 펼쳐지는 MSL 결승전에 대해 그는 "결승 상대가 일단 너무 강하다. 그래도 질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모든 것을 끝내기 전에는 방심은 무조건 금물이다. 그간 치렀던 많은 결승전 경험을 밑거름 삼아서 내 모든 실력을 발휘하겠다"라고 다부진 각오를 밝혔다.

준비 기간이 다소 여유있지 않았냐는 물음에 이제동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이영호와 자신 모두 입장이 비슷하다고. 여기다가 기량적인 측면보다는 당일 컨디션에서 승패가 판가름 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간은 사실 큰 의미가 없어요. 저나 영호나 우리 둘 입장이 모두 비슷하거든요. 준비는 양쪽 모두 완벽에 가까울 겁니다. 다만 당일 컨디션에 따라 승자와 패자가 나뉘겠죠. 누가 이기든 기회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것 아닐까요. 만약 제가 이겨서 영호가 양대리그 준우승에 머무르더라도 승부는 승부죠 ".
22일 대한항공 본사격납고에서 열린 스타리그 결승전 현장을 조정웅 감독과 함께 방문했던 이제동은 3세트 시작과 함께 자리를 떴다. 공교롭게도 이제동이 일어선 직후 이영호는 3, 4, 5세트를 내리 주며 역스윕을 당해 준우승에 그쳤다.
"마지막까지 결과를 보지 못했지만 분위기만 느끼러 간 거라 아쉽지는 않아요. 또 처음부터 누가 이길지 모른다고 생각했고요. 그래도 영호가 1,2세트를 연달아 잡는 걸 보고 '끝났구나'라는 생각은 했죠. 김정우 선수가 대단한 집중력을 발휘해서 역전했다는 걸 알고 놀랐죠".
이윤열이 보유하고 있는 개인리그 통산 최다 우승 타이 기록을 노리고 있는 이제동은 "기록이라는 건 굉장히 영광스러운 일"이라며 "윤열이 형이랑 우승 묏수가 같아지는 거라 이번 결승전에 의미가 담겨있다. 막상 우승을 해도 실감이 안 날 것 같다. 아직은 거기까지 바라보고 있지는 않다. 지금 있는 결승전 자체만 상대만 생각하고 싶다"고 다시 한 번 이영호에 대한 필승 의지를 다졌다.
끝으로 이제동은 "그동안 많은 결승전을 치러 봤지만 이번 결승전 만큼 승부욕이 생겼던 적은 없다. 그만큼 이기고 싶은 결승전이다. 굉장히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데 우승을 해서 응원을 해주신 많은 팬들께 멋진 모습을 보이고 싶다. 계속해서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팬들에게 인사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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