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중반의 박씨 아주머니는 항상 아기를 엎고 병원에 온다. 얼굴이 둥글고 말씨가 느리면서 부끄러움이 많아 오히려 진찰하는 사람이 더 어색할 때가 많았다. 데리고 온 아이는 큰 아들의 아들이라고 했다. 며느리가 직장에 나가기 때문에 아기를 맡아서 키운 뒤로 여러 곳이 자주 아파 혼자서 앓는다고 했다. 감기도 잦아졌고 밤이 되면 손끝과 발끝이 저려서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라고 했다. 몸이 아픈데도 며느리를 탓하지는 않았다.
먼저 혈액검사를 의뢰했다. 중성지방이 많았으나 콜레스테롤은 정상이었다. 중년 이후 절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육식을 멀리한 결과였다. 중성지방은 밥이나 빵처럼 전분 위주로 식사를 하거나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에게 많이 생긴다. 식사를 할 때 반찬은 먹지 않고 밥만 꾸역꾸역 먹는 사람들은 피검사 결과가 대개 이렇게 나온다.
음식조절 내용을 설명하고 치료를 시작했다. 약 1달간 1주일에 2∼3번씩 침 치료를 받은 뒤에는 깊은 잠을 잘 수가 있었다. 물론 손발이 저린 것도 사라졌다. 먼저 순환을 좋게 해 소통이 잘 되게 하고 나중에 피를 맑게 하기 위해 약물투여를 했다. 한방에서 손발이 저리다는 병증을 치료하는 것은 ‘기운을 조절하고 피를 맑게 하는 방법’이 대부분이다. 기운이 잘 움직이면 아프거나 저리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언론매체를 통해 광고되는 약물 중에는 피돌기를 좋게 하고 중풍을 예방한다는 내용이 많다. 하지만 약만 먹는다고 모든 것이 다 해결되겠는가. 평소에 몸이 건강하다고 해도 사소한 일에 쉽게 짜증을 부리고 화를 내는 사람이나 잘못된 음식습관이나 생활양식을 가진 사람들은 약물복용 이전에 이런 것들을 바로잡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이브닝신문=김달래 교수(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 사상체질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