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투로 프로 무대에 이름을 알렸고 신인왕 타이틀까지 획득했지만 원래 데뷔 시즌 전 그에게 주어졌던 자리는 바로 선발 보직이었다. 임태훈(22. 두산 베어스)이 점차 선발투수로서의 감을 찾아가며 또 한 번의 도약을 향해 뛰고 있다.
임태훈은 4일 대전 한화전서 선발로 나서 초반 타선 지원을 등에 업고 5⅔이닝 6피안타(탈삼진 4개, 사사구 1개) 3실점(2자책)으로 시즌 4승(3패, 5일 현재)째를 수확했다. 그와 함께 임태훈의 시즌 평균 자책점은 6.57에서 6.14로 다소 하락했다.
지난 5월 9일 사직 롯데전서부터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해 기회를 얻고 있는 임태훈의 선발 성적은 3승 2패 평균 자책점 6.04. 평균 자책점이 높은 편이기는 하지만 한 경기 당 50개 이하의 공을 던지는 연투에 익숙했던 임태훈이 점차 선발로 적응하면서 완급 조절 능력을 배우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직구 평균 구속이 조금씩 상승 중인 것 또한 고무적.

2007년 서울고를 졸업하고 두산에 1차 우선지명으로 입단했던 임태훈은 계약금 4억 2000만원을 받으며 커다란 기대를 모았다. 그리고 그 해 쓰쿠미 전지훈련 연습경기를 치르면서 두각을 나타내며 5선발 후보로도 꼽혔다.
당시 두산은 얇은 투수층으로 인해 골몰하던 팀이다. 다니엘 리오스-맷 랜들과 선발 삼각편대를 형성했던 박명환이 LG로 FA 이적하며 당시 3년차에 불과했던 김명제가 단숨에 3선발로 나서야 했던 상황. 여기에 2004년 병역 파동에 따른 전체적인 선수단 누수 및 실전 감각 회복 여부까지 감안하면 믿을 구석이 별로 없었던 팀이 바로 두산이다.
그 와중에서 김경문 감독은 "선발 로테이션에 좌완이 있어야 한다"라는 지론 속에 금민철(넥센)을 개막 4선발로 낙점하고 시즌을 시작했다. 남은 5선발 자리를 놓고 이경필(은퇴), 노경은 등과 후보로 꼽혔던 투수가 바로 임태훈.
그러나 전지훈련 막바지 컨디션 난조 등으로 인해 후보군에서 낙마하며 임태훈은 선발이 아닌 계투로 시즌을 시작하게 되었다. 고교 시절에 비해 한층 묵직해진 볼 끝과 강인한 마인드로 임태훈은 첫 해부터 두각을 나타냈고 이후 3시즌 동안 두산 계투진의 핵심 투수로 자리매김했다. 계투로 더없이 뛰어난 활약을 펼쳤으나 4억이 넘는 계약금을 받으며 기대를 모았던 투수가 이제서야 선발로 기회를 얻은 이유는 무엇일까.
2007시즌 후 리오스가 일본으로 이적하면서 두산은 선발진이 급격히 약화되었다. 2004년 다승왕(17승) 출신 게리 레스는 이닝이터의 면모를 보여주지 못하며 7회에 접어들기 전 계투에 바통을 넘기는 일이 허다했다. 2007시즌 도중 팔꿈치 부상을 겪었던 랜들은 점차 직구 구위가 하락하는 모습을 보이며 난타를 당하는 일이 잦아졌다.
팀 성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던 감독의 입장. 결국 김 감독은 성적을 논외로 하고 임태훈을 선발로 키우는 대신에 이재우와 함께 계투진을 지키는 필승카드로 꾸준히 투입했다. "감독 5년 째 되는 해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팬들에 보답하겠다"라는 목표를 지녔던 김 감독이었던만큼 투수진에서 가장 구위가 좋은 축이던 임태훈은 필승계투로 데뷔 첫 3년을 보냈다.
당초 임태훈의 선발 투입도 팔꿈치 부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한 이재우의 복귀 시점까지 한시적으로 꺼내 든 카드였다. 그러나 이재우의 회복세가 당초 예상을 밑도는 동시에 이적생 좌완 이현승마저 어깨 통증으로 선발 로테이션에서 이탈, 김 감독은 임태훈이 극한 부진을 보이지 않는 한 시즌 끝까지 선발로 기회를 줄 수 있음을 이야기했다. "올해만이 아니라 내년, 내후년에도 선발로 내세워 전도유망한 선발진의 한 축을 맡기고 싶다"는 뜻을 내포한 것.
미래의 선발 에이스로 기대를 모으며 거액의 계약금을 받았으나 그동안 팀 사정 상 계투로 뛰어야 했던 임태훈. 선수 본인 또한 오래전부터 선발로서 꿈을 키워가고 있다는 점은 팬들 사이에도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다. 뒤늦게 제자리를 향해 뛰어가고 있는 임태훈이 앞으로 이닝 소화, 경기 운영 능력을 더욱 키워나가며 제대로 된 선발 투수로 자라날 수 있을 지 팬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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