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라디오로 활기찬 풍물시장 만들래요"
OSEN 강희수 기자
발행 2010.06.07 16: 10

-서울 신설동 풍물시장 라디오 DJ 한봉석 씨
4월24일 개국 후 매주 수‧토요일 오후 2시 방송
PC통신 때 인터넷 개인방송 경험 살려 DJ 지원

장사에 애로도 있지만 상인들 애환 달래주고파
[이브닝신문/OSEN=김미경 기자] “자, 시그널 나갑니다. 오늘도 편안하게 갑시다!” 지난달 29일 서울 신설동 풍물시장 2층에 자리한 DJ박스에서 마이크를 잡은 사람들은 이곳 상인들이었다. 유명인은 없었다. 대신 시장에서 내로라하는 인물들이 DJ를 맡았다. 벌써 한 달째다. 프로듀서를 맡은 최창희(42)씨는 두 평 남짓한 라디오 박스를 분주하게 오가며 기계 상태를 확인했다. “방송 시작합니다. 큐!” DJ박스에 빨간 ‘생방송’ 불이 켜졌고 이날 한봉석(46)씨가 준비한 대본의 첫 멘트가 흘러나왔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날씨가 흐리다고 해서 장롱을 열고 뭘 입을까 한참 생각에 잠겼더랬습니다. 계절의 변화가 올 때면 해마다 작년엔 뭘 입었지? 생각하게 됩니다.”
평상시엔 이곳 상가에서 명품의류 및 잡화를 판매하는 그의 목소리가 시장 곳곳에 울려 퍼졌다. 방송 시작한지 5분이 지났을까. 시장구경에 나섰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방송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부스 안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귀를 기울였다.
 
-보이는 풍물라디오방송(pmb)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달라.
▲서울풍물시장은 동대문운동장 안 풍물벼룩시장 상인들이 2008년 신설동에 옮겨와 만든 상가다. 2층짜리 건물에는 잡다한 중고품부터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나 팔 법한 가요 카세트테이프를 판매하는 상점까지 색깔별로 동을 나눠 총 894개의 업체가 빼곡히 입점해 있다. 지난 4월24일에는 이 시장 2층 중앙통로에 작은 라디오 방송국이 새로 생겼다.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오후 2시부터 1시간 동안 라디오 생방송이 흘러나온다. 방송국에는 생방송이 가능한 실시간 영상중계방송시스템이 설치돼 있어 시장 내외부에 설치된 대형 모니터는 물론이고 인터넷 아프리카 방송(afreeca.com/pmbradio)을 통해서도 청취와 동시에 라디오 진행 모습을 구경할 수 있다.
 
-방송은 어떻게 시작했나.
▲지원한 셈이다. 현재 상인회 홍보팀장을 맡고 있는 최씨의 권유도 있었지만 음악을 워낙 좋아해 하고 싶었다. 과거 PC통신 시절, 그러니까 인터넷 시대로 넘어가는 10년전. 인터넷 개인방송을 했던 경험이 시장 활성화에 보탬이 됐으면 했다. 이번 방송의 목적은 서울풍물시장의 활성화다. 2008년 동대문운동장에서 신설동으로 이전한 후 아직까지 부작용은 따른다. 자리 잡지 못한 상점들이 있다. 좌판에서 팔릴 물건이 있는데 부스 개념으로 바뀌면서 그에 따른 어려움이 있다. 구경하러 오는 반면 구매까지 연결이 안 되는 경우도 더러 있다. 방송에서 시장 매장도 소개하고 함께 살아온 상인들의 소소한 얘기들을 나누고자 한다.
 
-운영은?
▲방송은 전문 DJ가 아닌 시장 상인 7명이 직접 진행한다. 두 명씩 짝을 지어 번갈아가며 대본을 쓰고 방송을 한다. 구제 의류 및 가방 등을 판매하는 최씨를 비롯해 김호종(DJ 산에)씨와 이종근, 김복동, 이유량씨. 그리고 오늘부터 합류하게 된 하태환씨다. 이종근씨(DJ 브루스리)는 예전 다방 DJ 경력을 한껏 살렸다. 초보자들이 다루기 힘든 기계 작동법 및 방송진행법 등은 서울시를 통해 교육받았다.
 
-예명 왜 안썼나?
▲그냥 ‘나’가 좋을 것 같았다. 이종근씨는 예전 DJ 시절 예명을 쓴 것이고, 굳이 어울리지도 않는 예명을 만들 필요가 있나 싶었다. 한봉석, 그 자체로 좋지 않나.
 
-‘끼’ 있는 학생이었을 것 같다. 전에는 무슨 일 했나.
▲평범한 학생이었다. 첫 직장에서도 평범한 월급쟁이였다. 가스공사에서 엔지니어 일을 하면서 아내를 만났고 24살 결혼했다. 상인 생활은 이제 7~8년 정도 됐다. 사람들과의 관계맺음이랄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다는 게 좋다.
 
-방송시간 장사는 제쳐 두는데?
▲옆 상점 등 주변 상인들이 대신해 준다. 고마운 일이다. 토요일 방송 때에는 가끔 아내가 나와 봐준다. 아내와 데이트하는 셈치고 즐겁게 방송을 하고 있다.
 
-가장 어려운 점은?
▲장사하는데 애로가 많다는 점이다. 대본부터 기계 및 아프리카방송 관리까지 퇴근 후에도 온 정신이 방송에 쏠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매출에도 신경 써야 하고 물건도 떼어 와야 하고. 첫 방송보다는 수월해지고 있으니 시간이 해결해 주리라고 믿는다. 잘하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유익한 시간이 되길 바란다. 아마추어들이라 욕심은 내지 않는다. 상인들이나 마실 나온 고객, 청취자 분들에게 재미있는 한 시간을 선사해 드리고 싶다.
 
-대본 구성은?
▲대본은 그냥 일상 그대로의 얘기를 담는다. 비오는 날이면 그날의 감성에 곡을 담고 상인들의 이야기부터 고객들의 사연. 그리고 예전에 메일로 받았던 고도원의 아침편지에서 좋은 글들을 간혹 소개한다. 좀 더 능숙해져 아프리카방송 청취자들의 반응까지 볼 수 있을 때면 그들의 얘기와 신청곡들도 소개해드릴 계획이다.
 
-주위 반응은.
▲장사하느라 잘 모르신다. 아는 분들은 역시 인근의 상인들이다. 방송을 마치고 매장으로 돌아오면 오늘은 어땠고 신청곡을 전달해주기도 한다. 한 달 정도 지나니까 이제 몇몇 상점들도 아는 눈치다. 잘 듣고 있다며 격려해 주신다. 가족들은 아프리카 방송을 듣는다. 가끔 조언도 해주는데 그냥 재밌어한다. 아빠 목소리를 방송을 통해 들으니까 아이들이 좋아해준다.
 
-모니터링은 하나?
▲안 한다. 아니 못한다는 편이 맞겠다. 자신이 출연한 방송은 보지 않는다던 연예인들 심정을 알겠더라. 민망하다. 자신감도 위축될까봐 스스로 오늘 방송은 어땠는지 질문하고 서툰 점을 수정하는 방식으로 방송을 진행하는 편이다. 편안하게 할려고 노력한다.
 
-큰 실수 없었나.
▲다행히도 큰 실수는 없었다. 의욕이 앞선 부분이 많고 DJ들 간의 교감도 부족하다. 매끄러운 연결부분이 미약하다고 할까. 음악과 멘트, 멘트와 멘트 사이의 연결 등이 여유롭지 못하다. 내가 쓴 이야기가 상인들을 대변해 나가는 만큼 책임감을 가지고 더욱 알찬 방송을 만들 생각이다. 아마추어니까 웃고 충분히 즐기면서 상인들의 얘기를 해나갈 거다.
 
kmk@ieve.kr /osenlife@osen.co.kr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