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할 수 있었는데 절 잡아 준 사람들에게 감사하다".
37번 '큰' 이승호(34, SK)가 거의 3년만에 거둔 첫 승의 기쁨을 주위 사람들에게 돌렸다.
'큰' 이승호는 8일 문학구장에서 열린 삼성과의 홈경기에서 불펜 투수로 나와 시즌 첫 승리 투수가 됐다. 선발 송은범이 흔들리며 2-2 동점을 내준 뒤인 5회 1사 2루에서 마운드에 올라 ⅔이닝을 실점없이 넘겼다.

첫 타자 대타 신명철을 상대로 볼넷을 내줘 불안한 출발을 알렸다. 그러나 삼성의 젊은 3번과 4번타자 최형우와 채태인을 나란히 삼진으로 돌려세워 팀 승리에 분명한 발판을 마련했다.
6회부터 마운드에 오른 정우람도 승리투수 자격이 있었다. 2이닝 동안 2피안타 4탈삼진으로 무실점했기 때문이다.
이에 이날 기록을 맡은 김상영 기록위원도 경기가 끝나기 직전에야 겨우 결정을 했을 정도였다. 결국 이승호가 위기에서 등판해 무실점한 것이 더 효과적인 투구였다고 판단이 내려졌다.
이승호가 승리투수가 된 것은 LG 유니폼을 입고 있던 지난 2007년 7월 13일 잠실 KIA전 이후 처음이다. 당시 7이닝 3피안타 무실점으로 호투를 펼쳐 선발승을 따냈다. 무려 2년 10개월 26일(1061일)만에 거둔 짜릿한 승리 신고였다.
작년 FA 이진영(LG)의 보상선수로 SK 유니폼을 입은 이승호는 단 4경기(선발 1경기)에 나온 후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아야 했다. 재활이 올 시즌 초반까지 이어진 탓에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평소 애교가 넘치는 아내조차 말수가 줄어들었다.
"아내가 편하게 해주려고 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래서 마음이 더 짠했다"는 이승호는 "마음고생이나 부담을 갖지 말라는 뜻으로 '지금 관둬도 괜찮다'고 아내가 위로해줬을 때는 가슴이 아팠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승호는 1군에 합류하고서도 "SK에서 한 것이 없어 답답하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뛰면서 하루하루에 감사하고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이승호는 경기 후 "기록원께서 마지막까지 고민을 많이 했다고 들었다. 이런 귀중한 승리를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며 "오랜만의 승리라 얼떨떨하다"고 기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이어 "아카호리, 박상열 2군 코치님들이 잘 만들어주셨다"고 말한 이승호는 지난 1일 문학 한화전에서 선발 등판 후 "포기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절실함이 긴장감을 이기더라. 야구를 좀더 깊게 생각하게 됐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또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말을 수도 없이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후회없이 새로운 투수로 태어나고 싶다"며 "올 시즌 목표는 1군에서 계속 살아남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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