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청대 3인방'의 의미있는 '선발승'
OSEN 박현철 기자
발행 2010.06.11 07: 29

수 분의 시차를 두고 나란히 다른 구장에서 선발승을 따냈다. 특히 4년 전 세계대회 우승 감격을 함께 누렸던 이들이 각 팀의 주축 투수이자 유망주로 선발승을 거둔 점을 감안하면 꽤 큰 의미를 지닌 선발승이었다.
10년 만의 노히트노런을 앞두고 아쉽게 선발승에 만족해야 했던 김광현(22. SK 와이번스)과 데뷔 첫 퀄리티스타트 선발승에 성공한 임태훈(22. 두산 베어스). 그리고 데뷔 첫 완투를 눈앞에서 놓쳤으나 선발 2승 째를 거둔 잠수함 이재곤(22. 롯데 자이언츠)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모두 지난 2006년 쿠바에서 열린 세계 청소년 야구 선수권 우승을 함께 한 선수들.
당시 활약도와 지명도에 크고 작은 차이가 있었던 것처럼 현재 팀 내 입지나 팬들의 주목도 또한 각각 다르다. 그러나 같은 날 약간의 편차를 두고 선발승을 거두며 앞으로의 가능성을 더욱 높였다는 점은 주목할 만 했다.

안산공고 출신 김광현은 당시 한국의 우승을 이끌며 2007년 두산과의 한국시리즈 4차전 깜짝 쾌투 이후 국내 대표 좌완 중 한 명으로 성장했다. 서울고 출신 임태훈은 데뷔 시즌부터 지난해까지 3년 간 팀의 주축 불펜 요원으로 활약한 뒤 이제는 '새내기 선발'로 적응 중이다. 경남고 출신으로 경찰청 복무를 마치고 롯데에 복귀한 이재곤은 팔꿈치 부상으로 공백을 남긴 좌완 이명우의 5선발 자리를 꿰차며 다음 경기 활약상을 기대하게 한다.
▲ 대기록 놓친 김광현의 '명불허전' 투구
"팀이 이겼으니 됐다. 다만 다음 경기에서 잘 던져야 하는 것이 걱정이다".
생애 한 번 하기 힘든 대기록을 놓친 아쉬움도 짙었으나 일단 팀 승리에 만족했다. 이날 김광현은 9회 2사까지 볼넷 3개만을 내주며 팬들의 기대감을 높였으나 2사 1루서 최형우에게 우전안타를 허용하며 노히트노런 대기록을 놓쳤다. 경기 기록은 8⅔이닝 1피안타(탈삼진 10개, 사사구 3개) 1실점.
지난 2000년 5월 18일 광주 해태전에서 송진우(당시 한화, 현 요미우리 코치 연수)가 금자탑을 세운 이후 리그에서 10년 간 노히트노런이 없었기에 선수 개인에게는 더없이 아쉬운 순간. 그러나 김광현이 이름값에 걸맞게 뛰어난 투구를 보여줬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시즌 개막 전 팔꿈치 부상 등으로 인해 스타트가 다소 늦었던 김광현은 올 시즌에도 7승 2패 평균 자책점 2.67(11일 현재)로 뛰어난 성적을 기록 중이다. 그러나 에이스로서 더 믿음직한 모습을 바라는 김성근 감독의 불호령에 1군 엔트리 말소 없이 '강진 유배'를 다녀오기도 했다.
그 사이 함께 국내 최고 좌완으로 명성을 떨치는 류현진(한화)은 2경기 연속 완봉 쾌투를 펼치는 등 8승 3패 평균 자책점 1.65로 순항했다. 앞서 언급된 세계대회 우승을 함께 일궜던 양현종(KIA)도 9승 1패 평균 자책점 3.17로 맹위를 떨치는 와중에서 자존심 회복을 위한 전환점이 필요했고 김광현은 나무랄 데 없는 투구로 이름값에 걸맞는 모습을 보였다.
경기 후 김광현은 "다행이다. 팀이 이겼으니 됐다. 졌으면 어떡할 뻔 했나. 컨디션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야수들이 좋은 기회를 만들어줬고 팬들로부터도 힘을 얻을 수 있었다"라는 말로 아쉬움 속에서도 에이스로서 동료와 팬들에 공을 돌렸다.
그러나 스스로 상승세를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은 다시 한 번 주목할 만 하다. 왕좌 탈환을 노리는 SK에 김광현은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에이스'이기 때문.
▲ '데뷔 첫 QS' 임태훈의 '큰 걸음'
"제게 익숙한 보직은 아니니까요. 하나하나 배워가면서 더 좋은 모습을 보여야지요".
팀 사정 상 계투로 활약해야 했고 이제는 자신이 원하던 보직에서 서서히 날개를 펴고 있다. 임태훈은 10일 광주 KIA전에서 6⅔이닝 동안 4피안타(탈삼진 6개, 사사구 2개)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시즌 5승(3패) 째에 성공했다. 그와 함께 임태훈은 시즌 평균 자책점을 6.14에서 5.33까지 떨어뜨렸다.
특히 이날 경기는 임태훈에게 뜻깊은 경기였다. 데뷔 후 1경기 자신의 최다 이닝 기록으로 첫 퀄리티스타트 피칭을 펼친 것. 투구수 또한 102개로 임태훈이 프로 데뷔 후 가장 많은 공을 던진 경기였다. 서울고 시절 이미 2학년 때부터 팀의 에이스로 많은 공을 던졌던 임태훈이 비로소 원하던 자리에서 마음 속에 탑을 세운 것.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하며 100개가 넘는 공을 던졌다는 점은 앞으로 김경문 감독이 선발 임태훈에게 얼마나 더 큰 믿음을 쏟을 것인지 알 수 있게 한다. 처음 임태훈에게 선발 보직을 부여할 당시 김 감독은 "계투로 전지훈련을 치렀고 연투에 익숙했던 만큼 당장 많은 이닝과 투구수를 요구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대신 김 감독은 임태훈의 경기 당 한계 투구수를 점진적으로 높여가며 적응력을 지켜봤다.
선발 임태훈의 7경기 성적은 4승 2패 평균 자책점 4.89. 슬라이더 실투가 10개의 피홈런으로 연결된 점은 아쉽지만 이닝 당 출루 허용률(WHIP)은 1.23으로 나쁘지 않고 피안타율 또한 2할4푼8리로 높은 편은 아니다. 완급 조절투보다 전력 투구가 익숙했던 임태훈이 선발로서 배우는 과정인만큼 상대적으로 높은 평균 자책점과 피홈런 갯수는 감안할 여지가 충분하다.
선수 본인 또한 이를 자각하고 있다. 선발 로테이션 합류 후 스케줄에 맞춰 보강 훈련에도 여념이 없는 임태훈은 "원하던 보직에서 활약하는 만큼 앞으로 더 좋은 활약을 펼치고 싶은 것도 사실"이라며 "선발에 더욱 걸맞는 몸 상태를 기반으로 효과적인 투구를 펼치고 싶다"라는 말로 앞으로의 각오를 밝혔다.
데뷔 첫 해 직구-슬라이더 투피치 스타일이 위력적이던 승리 계투 임태훈. 이제 그는 포크볼과 커브, 서클체인지업을 섞는 선발 유망주로 변신 중이다.
▲ 지저분한 '볼 끝'과 '근성', 비밀병기 이재곤
데뷔 첫 완투승을 눈앞에 두고 마운드를 내려왔고 실점도 5점에 달해 기록 상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그러나 배트 중심을 교묘하게 피해가는 싱커를 활용하며 사사구를 두 개밖에 내주지 않았다는 점은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을 짐작케 했다. 사이드암으로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 중인 이재곤의 이야기다.
입단과 함께 스포트라이트에 둘러싸였던 김광현-임태훈과 달리 이재곤은 주목도가 높지 않았다. 2007년 연고팀 롯데에 1차지명으로 입단했으나 1군에 단 한 경기도 출장하지 못한 채 경찰청 입대를 택했던 이재곤은 좌완 이명우의 팔꿈치 부상 결장으로 기회를 얻은 케이스.
그러나 선발 이재곤은 그리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5월 29일 선두 SK를 상대로 7이닝 2실점 호투를 펼쳤던 이재곤은 4일 대구 삼성전서 5이닝 3실점으로 데뷔 첫 승을 거뒀고 10일 넥센전에서도 8⅔이닝 5실점으로 시즌 2승에 성공했다. 선발로 이재곤이 거둔 성적은 2승 무패 평균 자책점 4.35.
20⅔이닝 동안 이재곤이 내준 사사구 갯수는 8개에 그친다. 10일 경기서 최고 142km의 직구에 직구와 구속 차이가 1~2km에 불과한 싱커를 섞으며 배트 중심을 피해가는 과감하게 땅볼 유도형 투구를 펼친 점이 눈에 띄었다. 제리 로이스터 감독도 최근 수 년간 리그 내 잠수함 선발 희귀현상에도 불구, 이재곤을 선발로 내세우는 데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주자 출루 시 상대적으로 느린 퀵 모션, 좌타자에 약하다는 점 등으로 인해 사이드암, 언더스로 선발 투수가 거의 전무하다고는 하지만 이재곤은 다르다. 퀵 모션도 그리 느린 편이 아니고 파괴력 넘치는 좌타자가 즐비한 삼성과의 경기서 호투했다. 충분히 선발로서 승산있는 투수라고 생각한다".
경기 후 이재곤의 매력을 또 하나 느낄 수 있었다. 5회 유선정의 타구에 오른쪽 무릎 밑부분을 강타당한 이재곤은 한동안 그라운드에 누워 고통을 호소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마운드에 서서 자기 공을 던졌다. "무릎에 공 실밥 자국이 새겨졌을 정도"라고 이야기한 이재곤은 "아팠지만 그래도 참고 던졌다. 완투승 욕심도 있었지만 해내지 못해 아쉽다"라고 밝혔다.
이제 세번째 선발 등판인 만큼 완급 조절 능력이나 체력 안배 요령이 부족한 와중에서도 완투승을 목전에 두고 내려온 점이 너무도 분해보였다는 구단 관계자의 이야기도 함께 했다. 아프고 힘들어도 오기로 버티는 근성을 알 수 있던 대목. 움직임이 대단한 볼 끝과 가슴 속에 투지를 지닌 이재곤의 향후 활약상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farinelli@osen.co.kr
<사진> 김광현-임태훈-이재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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