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상으로는 선발 4경기 연속 퀄리티스타트가 맞다. 그러나 시즌 전 예상된 불안 요소가 복합적으로 겹치는 바람에 패전으로 이어진 뼈아픈 경기였다. 두산 베어스의 외국인 좌완 레스 왈론드(34)가 무패 행진을 멈추고 시즌 첫 패를 기록한 데에는 잠재된 불안점이 숨어 있었다.
왈론드는 지난 11일 잠실 SK전에 선발로 등판해 7⅓이닝 동안 117개의 공을 던지며 6피안타 4실점(1자책)으로 호투했으나 자신이 저지른 실책이 빌미가 되어 3회 이호준에게 역전 스리런을 허용, 시즌 첫 패(4승, 13일 현재)를 기록했다. 평균 자책점은 3.89에서 3.43으로 내려갔으나 시즌 전 불안점으로 발견된 수비 불안과 아쉬운 마인드 컨트롤로 패배를 맛본 것은 되짚어 볼 만 하다.

지난해 요코하마에서 5승 10패 평균 자책점 4.80의 성적으로 최하위팀 선발 로테이션에서 2선발 노릇을 했던 왈론드는 2005년 LG 시절보다 한결 제구력이 나아졌다는 평가 속에 두산 유니폼을 입었다. 도미니카 윈터리그에서 팀의 구미에 맞는 좌완은 대부분 메이저리그 구단에 묶여있어 엄청난 비용 소모가 불가피했고 결국 후보군을 면밀히 지켜본 끝에 왈론드가 두산에 가세하게 되었다.
그러나 두산 구단 내에서도 예상했던 불안 요소가 있었다. 감정 제어 능력이 뛰어난 편은 아니라 경기 당 기복이 심한 동시에 번트 수비-내야수로 이어지는 송구 등 투수 수비 면에서 아쉬움이 있었다는 점. 특히 투수로서 수비는 동영상이 떠돌 정도로 안 좋은 모습을 보였다.
지난해 유튜브에는 '사에키 다카히로의 1루 수비 훈련'이라는 동영상이 있었다. 한국계 선수로 요코하마 주력 멤버 중 한 명이던 사에키가 한 외국인 투수의 불안한 1루 송구로 인해 경기 중 1루 수비에 곤욕을 치른 장면이 편집된 동영상. 사에키에게 공을 건네주던 투수는 바로 왈론드였다.
캔자스대 시절 외야수에서 투수로 뒤늦게 전향한 케이스인 왈론드는 선수 본인 스스로도 "또래 투수들에 비하면 투수로서 매뉴얼이 부족한 편이다. 그러나 이제는 투수로서 13년을 뛴 만큼 스스로 안정된 모습을 보여야 한다"라며 세부적인 플레이에 힘을 기울였다. 미야자키 전지훈련서도 왈론드는 특별 수비 훈련을 통해 조금 더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고자 했고 일본 시절에 비하면 전체적으로 투수로서 수비가 나아진 편이라는 평가.
그러나 11일 경기 3회초 2사 1루서는 박재상의 투수 정면 타구를 한 번 떨군 뒤 이를 맨손으로 처리하려다 결국 내야안타를 내주고 말았다. 이후 왈론드는 자신이 일을 그르쳤다는 생각에 후속 이호준에게 3볼을 내준 뒤 스트라이크를 잡으려 가운데로 직구를 우겨넣었다가 홈런을 내준 것. 투구수가 많았음에도 8회 마운드에 오른 것은 왈론드가 스스로 책임감을 앞세워 등판을 자원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구단 관계자의 전언.
김경문 감독은 왈론드의 11일 투구에 대해 "잘 던졌으나 한 순간의 감정 컨트롤 실패로 인해 역전패해 아쉽다"라고 이야기했다. 2군에서 복귀한 후 연일 선발로서 좋은 모습을 보였기에 감독의 믿음을 회복했으나 아직 완벽한 모습이 아니라는 점에 아쉬움을 곱씹은 것. 특히 지난 3년 간 매번 가을잔치에서 무릎을 꿇게 했던 SK를 상대로 한 패배임은 더욱 짙은 아쉬움을 남겼다.
다소 거칠어 보이는 외모로 인해 선수단 내에서 밥 샙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왈론드지만 그는 겉모습과 정반대로 심성이 착한 선수다. 그러나 심성이 곱기만 한 투수는 여러가지 지략이 펼쳐지는 야구판에서 엄청난 두각을 나타내기 힘든 것이 사실. 김 감독은 왈론드가 조금 더 차가운 심장을 갖고 교과서적인 수비로 앞으로의 경기를 펼치길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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