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힘을 믿고 단결해서 하나가 되고 열심히 한다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정대세).
정대세의 호언장담은 아쉽게도 실현되지 않았지만 ‘정대세에 의한 축구’는 계속됐다.
44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북한(FIFA 랭킹 105위)이 16일(한국시간) 오전 3시 30분 요하네스버그 엘리스파크 스타디움에서 강력한 우승 후보 브라질(1위)과 G조 1차전을 치렀다. 경기 결과는 2-1로 브라질이 승점 3점을 챙겼다.

북한의 기적을 이끌 주인공으로 손꼽혔던 인물은 바로 최전방 공격수 정대세(가와사키)다. ‘인민 루니’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그는 그리스, 나이지리아와 평가전에서 잇따라 득점을 성공시키며 세계 무대에서 스스로를 각인시킨 바 있다.
이날 경기에서 정대세는 북한의 키 플레이어로서 역할을 다했다. 전반 10분 그는 수비 3명을 제치고 오른쪽 측면 구석에서 오른발 슈팅을 날렸다. 비록 줄리우 세자르(인터 밀란) 골키퍼의 선방으로 막혔지만 돌파력과 골 결정력을 보여준 멋진 장면이었다.
전반 25분에 보여준 과감한 돌파도 인상적이었다. 상대 수비를 제치며 기회를 마련했지만 패스를 받을 동료가 없어 골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27분에는 마이콘(인터 밀란)과 충돌로 다리에서 피가 흘렀지만 곧바로 일어나 경기장을 누비는 투혼을 발휘했다.
전반 30분 홍영조의 패스로 북한에 또 다시 역습 기회가 생겼다. 정대세는 볼을 이어받아 골문 근처에까지 이르렀지만 루시우(인터 밀란)가 저지했다.
위험한 장면도 나왔다. 전반 45분 역습을 위해 상대 진영으로 공을 몰고 가던 그에게 미셸 바스토스(리옹)가 과격한 태클을 시도한 것이다. 다행히 부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으나 경고감이었던 태클에 주심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아 의구심이 일었다. 이외에도 정대세는공수를 넘나들며 전후반 풀타임을 소화했다.
하지만 후반 5분 마이콘이 엔드라인 근처에서 오른발 아웃사이드슛으로 북한의 골문을 가르면서 팽팽하던 경기 균형이 깨졌다. 이어 후반 26분에는 호비뉴(맨체스터 시티)의 패스를 받아 엘라누(갈라타사라이)가 추가골을 터뜨렸다.
G조 첫 경기를 마친 포르투갈-코트디부아르가 0-0 무승부를 기록한 탓에 이번 경기의 중요성이 무척 큰 상황이지만 세계 최강 브라질을 맞아 치른 경기치고는 북한이 좋은 플레이를 선보였다는 평가다.
경기 시작 전 바짝 깎은 머리와 굳은 표정으로 결연한 의지를 보여준 정대세는 이날 북한의 국가가 울려 퍼지자 감격한 듯 눈물을 흘려 보는 이들의 마음을 찡하게 만들기도 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는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후반 40분 주안(AS 로마)을 스피드에서 이겨냈는데 정대세가 슈팅을 시도하려는 순간 주안이 태클로 볼을 걷어내 아쉬운 장면이 연출됐다.
더 놀라운 상황은 또 있었다. 후반 43분 루시우가 방심한 틈을 타 지윤남이 만회골을 터뜨린 것이다. 도우미는 정대세였다. 북한 수비수의 공을 받은 정대세는 지윤남에 헤딩으로 공을 연결했고, 이를 지윤남이 왼발로 꽂아 넣었다. 2-0으로 끝날 줄 알았던 경기가 북한의 만회골이 터져 나오면서 전 세계인들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한편 북한은 역대 최다 우승(5회)을 자랑하는 브라질을 비롯해 ‘유럽의 강호’ 포르투갈, ‘아프리카 축구의 핵’ 코트디부아르 등과 함께 '죽음의 조'로 꼽히는 G조에 속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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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손용호 기자 spjj@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