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드 당한 상태에서 선발 투수가 계속 마운드를 지킨다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 게다가 승리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집중타까지 맞는다면 투수는 더욱 악전고투를 펼치게 마련이다.
지난 16일 잠실 두산전서 선발로 나선 박명환(33. LG 트윈스)의 119구 역투는 여러 의미를 담고 있었다. 실투가 실점으로 이어지며 중반 이후 경기가 넘어간 상황이었으나 그를 6회까지 마운드에 올린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16일 경기를 앞두고 박종훈 감독은 15일 두산전을 떠올리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초반 난타전 끝에 9-14로 패하면서 이상열-오상민-김기표 등 승리 계투로 분류할 만한 투수들을 등판시켰기 때문. 이상열은 ⅔이닝 동안 17개의 공을 던졌으며 오상민과 김기표는 1이닝 씩을 맡았다.
"15일 선발로 나선 한희가 많은 공을 던져(2⅔이닝 84구) 계투를 조기투입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다만 경기를 하면서 끝까지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선 폭발력을 믿었던 만큼 승리 계투를 지고 있는 상황에서 투입한 박 감독의 승부수였으나 아쉬운 패배로 이어진 것.
그 후폭풍은 16일 몰아쳤다. 지난 10일 한화전서 6이닝 퍼펙트 피칭을 하는 등 7이닝 3실점 호투를 펼쳤던 박명환이 친정 두산 타선을 상대로도 호투했더라면 순조로운 시나리오를 쓸 수 있었으나 상황은 반대로 전개되었다. 박명환이 초반부터 불안한 투구를 보여주는 가운데서도 조기 투입할 계투 요원이 마땅치 않았던 것. 5회까지 이미 95개의 공을 던지며 7실점한 박명환이 6회에도 마운드에 오를 수 밖에 없었던 이유다.
경기 후 박 감독은 "박명환의 몇 차례 실투를 두산 타자들이 놓치지 않았다. 안정적인 경기 운영을 하려면 선발투수들이 제 역할을 해줘야 하는 데 그러지 못한 점이 아쉽다"라며 패배를 자평했다.
지난 2년 간 계투진에서 분투했던 정찬헌이 그동안의 혹사 후유증을 떨치지 못하고 있고 마무리 후보로도 꼽혔던 이재영마저 2군에 머물러 당장 계투진의 추가 수혈 가능성이 크지 않은 LG의 팀 상황을 고려하면 선발 박명환의 호투가 절실했다. 그러나 상황은 반대로 흘러가며 LG의 3연패로 이어졌다. 어깨 수술 전력의 박명환이 119개의 많은 공을 던질 수 밖에 없던 이유.
일단 박명환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5⅔이닝을 소화, 다음 경기 계투 투입 여부를 생각하면 급한 불은 끈 상황. 그러나 이러한 모습이 다음 경기서도 재현된다면 투수진의 연쇄 붕괴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꼭 1년 전 2위까지 올랐던 기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하위권으로 추락했던 LG에게는 지금이 잠재된 위기 상황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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