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태의 WC 돋보기]일본, 선전했으나 한국의 전술적 과오 '답습'
OSEN 조남제 기자
발행 2010.06.20 10: 19

[6월 19일 네덜란드-일본(E조), 더반]
 
네덜란드와 일본의 경기를 지켜본 한국의 팬이라면 아마 지난 17일 있었던 한국과 아르헨티나의 경기를 떠올렸을 것이다. 분명 일본의 전술은 한국이 준비한 전술과 거의 동일했다. 같은 전술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실패하고 일본은 일정 성과를 거둔 이유는 상대팀의 공격 템포 때문이다.

아르헨티나는 빠른 공격 템포를 갖고 있다. 단순히 빠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탄력이 붙기 때문에 이러한 밀집 수비를 뚫기에는 훨씬 효과적인 공격 스타일이다.
반면 네덜란드는 정적인 축구를 추구한다. 일정한 포메이션을 유지한 채 패스  정확도가 높기 때문에 볼의 점유율은 높게 나타나지만, 동적인 움직임의 부족으로 날카로움이 없다. 게다가 상대방의 수비진을 끌고 다닐 만한 포스트 플레이어도 없다.
이날 경기에서 네덜란드는 자블라니의 탄력을 십분 활용한 중거리 슛으로 승리를 거두긴 했지만 후반전에 교체 투입된 엘리아를 제외하면 네덜란드라는 명성에 걸맞은 공격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묵직한 경기 운영을 바탕으로 공격에서도 압박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긴 했지만 결정적으로 골을 노릴 만한 공격 패턴을 보여주지 못했다. 상대 수비진에 빈 틈이 생기면 그것을 놓치지 않는다는 면에서 강팀이라 평가할 수는 있지만 스스로 틈새를 만들지 못한다는 면에서 최고의 팀이라 평가하기는 부족하다.
물론 부상으로 결장한 로벤과 훈텔라르라는 공격 옵션이 살아난다면 전혀 새로운 팀으로 바뀌겠지만 일본과의 경기에서 보여준 네덜란드의 경기력은 말 그대로 실망스러웠다.
일본은 아르헨티나전의 한국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패배가 부끄럽지 않은 경기력을 보여줬다. 3선을 끌어올림으로써 2선과 간격을 좁혔고 적극적인 압박을 통해 쉽게 틈을 주지 않았다.
특히 일본의 수비수 툴리오의 제공권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세트피스 상황을 포함해 네덜란드의 거의 모든 크로스를 클리어했을 뿐 아니라, 경기 막판에는 원톱으로 올라가 포스트 플레이어로서 역할까지 완벽하게 수행했다.
일본은 예전부터 귀화 선수를 월드컵에 출전시켰는데 일본 툴리오와 북한 정대세의 활약을 바라보며 동포에 대한 관심을 소홀히 하면 안 되는 시대임을 느낄 수 있었다.
반면 일본 또한 후반전에는 한국이 아르헨티나전에서 저지른 전술적 과오를 답습했다. 한국이 아르헨티나 전에서 그러했듯 일본도 후반 초반에 공격적인 맞불 작전으로 승부를 걸었다. 이는 아마도 일본의 마지막 경기가 어떤 의미에서는 네덜란드보다도 상대하기 껄끄러운 덴마크라는 점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자신보다 개인 기량이 좋은 강팀과 경기에서 공격적인 축구를 하고자 할 때는 타이밍을 잘 잡아야 한다. 네덜란드의 교체카드에는 엘리아를 비롯해 빠른 선수들이 많기 때문에 일본 오카다 감독으로서는 그들이 투입되기 전에 미리 공격을 시작하고 싶었겠지만 결과적으로 후반 초반은 적절한 시기가 아니었던 셈이다.
일본은 비록 패하긴 했지만 약속된 플레이의 진수를 보여줬다. 역습 시에도 적은 수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수비의 뒷 공간을 활용하는 스루패스로 위협적인 찬스를 만들어냈다. 특히 세트피스 상황과 막판 툴리오를 활용한 공격 등을 보면서 경기 중 나올 수 있는 다양한 상황에 충분히 준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일본의 남은 상대가 덴마크임을 고려하면 16강 진출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일본 선수들의 기량이 한국 선수들에 비해 부족할 뿐더러 조 편성도 불리했기 때문에 이미 예상된 바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월드컵에서 보여준 일본의 경기력과 결과는 결코 저평가될 수 없을 것이다. 사무라이 재팬이란 명칭이 부끄럽지 않은 선전이었다.
 OSEN 해설위원(FC KHT 김희태축구센터 이사장, 전 대우 로얄스 및 아주대 명지대 감독)
<정리> 김가람 인턴기자
<사진> 더반(남아공)=송석인 객원기자 song@osen.co.kr
■필자 소개
김희태(57) 해설위원은 국가대표팀 코치와 대우 로얄스, 아주대, 명지대 감독을 거친 70년대 대표팀 풀백 출신으로 OSEN에서 월드컵 해설을 맡고 있습니다. 김 위원은 아주대 감독 시절 서울기공의 안정환을 스카우트했고 명지대 사령탑으로 있을 때는 타 대학에서 관심을 갖지 않던 박지성을 발굴해 한국을 대표하는 스타 플레이어로 키워낸 주역입니다. 일간스포츠에서 15년간 해설위원을 역임했고 1990년 이탈리아 대회부터 2006년 대회까지 모두 5차례의 월드컵을 현장에서 지켜봤고 현재는 고향인 포천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축구센터를 직접 운영하며 초중고 선수들을 육성하고 있습니다.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